[그리운 사람에게 띄우는 엽서한장] 쌀이며 푸성귀 싸들고 오셔서 그냥 돌아서던 어머니 생각이

이수자(시인)

가을비가 소리 없이 며칠을 적신다. 온 들판은 누렇게 고개 숙이고 있다. 이렇게 들판이 익으면 나도 모르게 들길로 향한다. 내 어릴 적 친정집 부모님 육남매나 되는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좋은 땅 다 팔아먹고 천수답만 남아 두 분이 호락질을 하셨다. 늙어 힘은 없고 지친 모습으로 벼를 베어 논에 깔아 며칠을 말리고 굽은 허리로 겨우겨우 뒤집어 놓고 나면 밤새 비가 내려 논에 물이 가득 고여 있다.

 

지금은 경지정리가 잘되어 자동차가 못가는 곳이 없다. 파종서부터 거두기까지 어느 것 하나 사람의 손이 아니어도 우리들의 생활은 스위치 하나면 안 되는 것이 거의 없다. 유난히도 몸이 약하셨던 어머니, 농사일에 시달리어 야윈 얼굴이 창호지 문에 달그림자처럼 그려져 있다.

 

가난한 집 칠남매 장남 며느리로 시집보내고 나 때문에 발 한 번을 편히 뻗지 못하고 사셨다. 쌀이며 푸성귀를 보퉁이보퉁이 싸 오시어 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에 선 채로 나 먹을 것 한 끼라도 더 먹으라며 돌아서시던 뒷모습. 제 가슴 한편에 멍으로 남아있는 것 아시는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들이 외식하러 가자고 하면 사양하지 않고 따라나선답니다.

 

어머님 떠나신 지 삼십 년 모든 호흡하는 것은 오면 가는 법.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어머니만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주기를 소원해 본답니다. 오늘밤 꿈길에라도 뵈올 수 있을까 어머님이 훔치던 눈물로 젖어보고 싶어요.

 

/이수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