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 민의 저버린 의정비 담합 - 권순택

권순택(정치부 부장)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주민 형편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은 내쫓아야 한다”

 

최근 의정비 인상을 둘러싸고 도민여론이 들끓고 있다.

 

막판 눈치보기 끝에 도와 시·군 의정비심의위원회가 잇따라 지방의원의 의정비를 대폭 인상하자 지역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가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엊그제 무주군은 의원 1인당 연간 2120만원인 의정비를 4200만원으로 무려 98%나 올렸다. 월 176만원에서 350만원으로 배가까이 인상했다.

 

임실군도 2329만원에서 3900만원으로 67%나 올렸고 남원시 61.7%, 고창·부안 49%, 김제시 46% 등 시·군마다 줄줄이 대폭 상향조정했다.

 

도대체 무슨 근거와 상식으로 이렇듯 의정비를 책정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부터 지방의원 유급제가 도입돼 자치단체마다 나름대로 적정수준의 의정비를 책정했다. 그런데 1년만에 또 다시 의정비를 대폭 인상할만한 요인이 생긴 것인가. 과연 의원들의 의정활동이 예전보다 확 달라졌고 의회 활동으로 인해 시·군 행정이 크게 개선됐으며 지역주민의 삶과 생활환경이 그 만큼 나아졌는가.

 

의정비 인상을 결정한 심의위원들은 이에 대해 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쾌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의정비를 책정하려면 적어도 주민 의견을 반영해야 마땅하다. 지방자치법과 시행령에도 의정비 결정의 적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청회와 여론조사 등 지역주민의 여론수렴을 거치도록 명시해놓고 있다.

 

하지만 의정비 책정과 관련, 도와 시·군이 공청회 한번 개최한 적이 없었다.

 

시·군에서 실시했다는 여론조사도 형식적이고 구색맞추기에 불과했다. 일부는 자치단체 홈페이지를 통해 설문조사를 했다고 밝혔지만 설문에 응한 사례수가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주민 대다수가 의정비 인상을 반대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대폭 상향조정했다는 점이다. 무엇때문에 주민의견 조사를 했는지 의구심마저 일고 있는 대목이다.

 

전북도의 경우 도민 500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 결과, 지난해보다 10%정도 많은 4500만원선이 전체 응답자의 55%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의정비심의위원회에선 4920만원으로 20.9%를 올렸다. 이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최고 인상률을 기록, 도민들로부터 눈총을 사고 있다.

 

무려 98%를 올린 무주군도 ‘의정비를 현행대로 유지하자’는 주민의견이 48.6%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지만 무차별 인상을 강행했다.

 

사실 의정비의 대폭 인상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지난 8월 전국 시군구의회 의장단협의회에서 시·군·구의회와 집행부에 지방의원 연봉을 부단체장급으로 인상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었다는 것. 당시 대외비로 된 이 문서에는 연봉 인상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전국 지방의회가 의정비 인상을 위해 담합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심지어 전주시의회는 상임위를 통과한 조례안과 지방채발행동의안을 본회의에서 유보·부결처리하자 의정비 책정과 관련, 집행부를 길들이기 위한 ‘보복심사’가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대의기관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주민 뜻을 저버리고 어찌 민의의 대변자라 할 수 있는가. 자치단체 역시 주민 여론은 무시한 채 의회 눈치보기에만 급급하다면 민선자치는 허울에 불과할 뿐이다.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서민과 근로자 농민들의 깊은 시름은 아랑곳 없이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되면 다음 선거때 민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권순택(정치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