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으로 볼 때 24절기 중 19번째 절기로 음력 10월의 상강(霜降)과 소설(小雪)사이에 든다. 흔히 입동 이후 3개월 동안을 겨울로 여긴다.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면서 겨울을 앞두고 한해의 마무리를 준비하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기 위해 속이 찬 배추를 짚으로 묶어주기도 하고 무를 구덩이에 파서 저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때가 되면 자연과 더불어 하늘의 뜻에 순응하며 순리적으로 살아 온 게 우리들의 삶이다. 꽃피는 봄과 찬 서리 내리는 겨울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진리를 은연중에 체득한 것도 우리들이었고 지혜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요즘 정치권에서는 한 사람을 놓고 역천자(逆天者)인지 순천자(順天者)인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바로 이회창 전 총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엊그제 이회창 전 총재가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끝에 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지만, 정치권이 온통 벌집 쑤셔 놓은 듯 시끄러웠고 이해득실 속에 독설(毒舌)과 환성(歡聲)이 상반되고 있다.
이회창 그가 누구인가. 한때 대법관, 감사원장, 총리를 지냈을 뿐만 아니라 법과 원칙 그리고 대쪽과 같은 카리스마로 한나라당의 총재와 두 번의 대권주자를 거머쥐었던 한나라당의 태조가 아니었던가? 지난 97년 990만 표, 2002년 1100만 표로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한 몸에 받고도 아쉽게 통한의 눈물을 흘린 이대의 불세출 정치인 이었다. 이제 그가 절치부심 끝에 국민 앞에 섰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개인의 회한(悔恨)보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차원에서 보수 재 결집을 통한 제 3기 좌파정권의 집권을 저지하는데 시대적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며 출마의 당위성을 피력할 때에는 숙연함 속에 비장한 결의마저 보였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정치의 속성상 그리고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임을 감안할 때 이회창 전 총재는 분명히 승산 있는 계산을 하고 뛰어들었을 것이다. 대권 3수라는 비아냥거림과 보수분열의 지탄속에서도 홀연 단신으로 꿋꿋이 일어섰다.
어찌됐건 그의 등장으로 대선가도는 이념논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선은 무늬만 이념논쟁을 띠었을 뿐 진정한 색깔을 드러낸 적이 없다. 보다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또는 가지고 있던 표를 잃지 않기 위해 스펙트럼을 넓게 잡고 가치를 펴 온 탓이다. 일부에선 중도라는 말을 유행처럼 차용하곤 했다. 하지만 울트라 라이트(극우)의 기치를 내건 이 회창 전 총재의 등장으로 보수냐 진보냐, 우파냐 좌파냐 하는 이념논쟁을 촉발시킬 게 분명하다. 어정쩡한 것 보다는 훨씬 바람직한 일이다.
뉴 패러다임으로 무장한 대안세력의 등장이 없어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정치판이 이회창 전 총재를 불러들였다는 어느 보수논객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날카로운 시선 또한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비장한 각오 속에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회창 전 총재가 순천자(順天者)의 자리에서서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나경균(전북희망포럼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