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고운 단풍 길을 오가는 올해를 끝으로, 외길로 걸어온 교직생활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교직은 아버님을 향한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제 나이 다섯 살 때, 초등학교 교사이시던 아버님은 적성천을 건너 유등초등학교에 출근하시다가 불어나는 물에 형과 함께 유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32세 때이니, 저에게는 너무도 빠른 아버님과의 이별이었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아버님이 못 다 하신 유업을 이어보겠다고 교직을 선택하였습니다. 3월이 되어 담임을 맡게 되면 제일 먼저 편모슬하의 아이들을 파악하여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두고 지도하는 습관이 저도 모르게 생겨났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저의 보상심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집에서도 좋은 아버지가 되어보려고 노력은 많이 해 보았지만 아버지 없이 자란 제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메워질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아버님은 언제나 제 가슴 속에 서른 살 빛나는 청년이십니다. 아버님의 모습에서 저의 젊은 날을 보듯, 아버님 또한 저의 모습에서 아버님의 못 다 하신 여생을 보시고 계신다면, 저 어릴 적 훌쩍 떠나신 아버님을 생각하면서 선택한 사랑의 교육 40여 년이 아버님 자식으로서 뜻 깊고 영광스런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정의 은행나무가 그 노란 잎을 다 떨구고, 파란 하늘에 가지만 앙상하게 서 있습니다. 가지 사이 비어 있는 공간마다 파란 하늘이 가득 들어와 있습니다. 비어 있음으로 다른 무엇이 가득 차오를 수 있다는 것이 아버님의 뜻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감사합니다.
/한상인(진안 동향중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