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읽고 싶은 이유는 순전히 끌려서였다.
표지 한 가운데 써있는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선정적이라면 선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구와 책 날개에 써있는 저자의 글때문이었다. ‘관능적인 독서’란 표현은 무한한 호기심을 일으켜 눈과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으며, ‘엄마는 나의 검은 피부를 싫어했고 나는 나의 갈색 피부를 좋아했으며, 엄마는 나의 헝클어진 머리를 싫어했고 나는 나의 부스스한 머리를 좋아했다. 우리는 많은 부분 통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엄마는 내가 책을 읽을 때면 항상 자기를 닮아서 애가 이렇게 책을 좋아한다고 칭찬하고 인정해줬다’는 짤막한 글도 매력적이었다.
「침대와 책」(웅진지식하우스). 사랑이 끝났음을 알아채는 순간, 감정이 휘몰아쳐 삶이 휘청대는 날, 침실로 들어가 책장을 펼치면 어김없이 인생의 힌트를 주었던 책 이야기다.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걸려올 단 한통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첫사랑 애인이 전화해서 만나자 했다고 난리치는 사람을 만나면 「마담 보바리」를, 맹추 같은 남자에게 빠져 허우적대는 눈 먼 바보에게는 「노트르담의 꼽추」를 줄 것이라는 저자. 그는 ‘김어준의 저공비행’과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등을 만든 CBS PD 정혜윤씨다. “라디오 PD가 된 뒤로 잘 놀라지도 상처 받지도 않는다”는 그는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수만 가지 방식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책과 라디오 때문이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 졸음이 쏟아지는 순간 손을 뻗어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책을 읽는 버릇이 있다. 옆으로 누워 책을 읽다가 가끔 골반 한쪽이 내려앉을까봐 자세를 바꾸는 것 말고는 오로지 눈동자만 움직이는 그 시간이 그에게는 간신히 인생의 해답을 얻어가는 시간이라고 했다.
책 속에 실린 책들은 대부분 소설 위주며, 연관지어 떠올려 볼 수 있는 영화도 간간이 등장한다. 다른 독서 에세이에 비해 작품의 본문을 발췌한 분량이 비교적 많다는 게 장점이면 장점이고, 또 단점이면 단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지식 자랑만 하다 결국은 읽는 이로 하여금 좌절감을 맛보게 하는 무지막지한 독서 편력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본문과 잘 어울리는 사진들은 인기 여행산문집 「끌림」의 저자 이병률씨가 직접 촬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씨가 이야기하는 침대와 책의 공통점. 한 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기 어려우며, 특별한 사람에게만 빌려주고 싶으며, 화려한 커버를 두르고 있더라도 진가는 내용에서 드러난다는 것. 때론 잠을 부르고, 때론 잠을 쫓는다는 점도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