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나 많은 비가 내렸던지 봉분마저 다 할 수 없어서 황톳물이 폭포처럼 넘치던 천주교 묘지에 너를 남겨두고 왔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잠들어야 할 어둡고 찬 땅속에 꽃 같은 서른다섯 너의 청춘을 묻고 돌아오던 날의 기억엔 상처가 너무 깊다.
다시는 네가 돌아 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너를 보내는 날은 눈물도 안나왔어.
열한 살 난 아이가 상주가 된 서러운 너의 영정 앞에서 무너지던 가슴의 틍증, 그러나 이제 너를 생각하는 시간의 간격이 점점 멀어지고, 슬픔에도 세월이 약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 밤을 세워 쓴 편지를 보낼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 버렸을 때, 그립다고 말하는 것도 미안하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파랗다. 구름은 너무 깨끗하고 말이 없다. 비 소식은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다.
미현아. 네 맑은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것만 같은데… 그새 몇 번이나 꽃이 피고 졌는데도 소식도 없구나.
나를 잊어버린 걸까? 무정한 친구야. 나는 너에 대한 그리움만 켜켜로 쌓으면서 네가 돌아오지 않는 가을을 또 한번 맞이 하는구나.
/최혜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