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성장보다 분배에 정책을 기울일 때 - 이강녕

이강녕(전 전라북도 교육연구원장)

필자는 일과처럼 아침이면 시내버스를 타고 모악산으로 달린다. 그러다 보면 가슴을 저며 오는 듯한 두 그림이 필자의 머리를 스친다. 그 하나는 다가동 우체국 앞을 지날 때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도시락 가방을 등에 맨 채 그곳에 정차하는 차량을 향해 줄달음을 치는 여인들의 모습이다. 그곳은 이른바 인력시장이다. 하루의 잡 인부를 구하러 오는 차량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 한 발자국이라도 앞서야 그 날의 선택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선택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망의 빛을 띄우며 돌아서는 그 모습에서 하루의 절망을 본다.

 

두 번째는 완산동에서 버스에 오르는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와 50대를 훨씬 넘은 여인 4,5명의 모습이다. 늘 그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서 모두 내린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갔는데 일과처럼 벌어지는 이 상황에서 궁금증이 생기고 급기야 그들이 일자리를 알고는 이 시대에 사는 사람으로서 기쁨보다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들은 버린 옷가지를 모아 놓은 곳에서 우리 보다 못사는 나라에 수출하기 위한 선별 작업에 참가한 사람들이다. 조금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고된 일거리와는 상관없이 늘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들은 그 날의 일당벌이에 참가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듯했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필자의 마음을 찢는 듯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웬일일까.

 

한국은행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06년 말 기준 국민소득 1만8373불을 넘어섰고 금년 말에는 2만불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높게는 11위에서 낮게는 13위에 위치한다는 얘기다. 이런 국가에서 지금도 하루의 일거리를 못 찾아 쓸쓸히 돌아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당 2만원 정도의 저임금에도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 모습으로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우리는 이 시점에서 국가 정책자, 그리고 대선에 출마한 수많은 사람에게 묻고 싶다. 우리나라의 취업자중 비정규직이 46%가 넘는다는 것이 어제의 언론 보도다. 과연 이 시점에서 어떤 구조조정을 통해서라도 생산성만 높이는 것이 상책인가, 아니면 분배를 우선함으로서 국민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우선인가. 국민이 불안해하고, 46%가 넘는 취업인이 비정규직에서 몸부림치며 그저 생명유지에 급급해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원하는 상황은 아니다.

 

국민소득 증가만이 우리의 바람은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국민소득이 낮고 열악한 생활 속에서도 오늘날과 같은 사회불안은 없었다. 지금과 같은 사회불안은 빈부격차가 그 원인이다. 성장위주의 정책으로는 해결할 길이 없다. 이젠 정말 분배에 나라의 역량을 쏟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