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통일로 가는 종이비행기 - 김판용

김판용(시인·전북교육청 연구사)

며칠 전 평양을 다녀왔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평양의 교육기관을 방문해 북한 교육의 실태를 보고 온 것이다. 북한이 다른 기관도 아닌 교육기관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쉽게 결정된 일은 아니었다. 올해 창광유치원과 금성학원, 그리고 김책공업종합대학 등을 열어줬고, 이에 앞서 작년에는 모란봉제1중학교까지 우리 전라북도교육청 방문단에게 열어준 것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평양을 떠나오기 전날 만난 북한의 남북화해협력위원회 이충복 부회장은 교육 협력은 오직 전라북도교육청하고만 하고 있다며, 특히 핵문제로 어렵던 작년에 교과서용지를 보내준 점에 대해 신뢰를 보여주었다. 우리 교육청은 ‘(사)우리겨레 하나되기 전북운동본부’와 함께 작년과 올해 교육가족들의 성금을 모아 북한에 교과서용지 700여 톤, 약 70만권의 교과서를 만들 분량을 지원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지원한 물자가 군부로 흘러 들어가거나 일부 특권층의 배만 불리게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그러면서 북을 돕는 일에도 매우 소극적이다. 이제까지의 남북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현물로 북을 지원하고 있기에 그럴 염려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지에서 본 북한 학생들의 교과서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형편이 없다. 과거 벽지를 바르기 전에 쓰던 흑지 수준의 종이를 교과서 용지로 쓰고 있다. 그나마 물량이 모자라 노트를 구하기는 더 어려운 실정이다. 또 이런 현실을 이야기하면 산림이 많으니까 종이는 넉넉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북한은 연료가 거의 고갈되었다. 차도 달릴 때 외에는 시동을 켜지 않는다. 국가 주요 시설물인 박물관과 같은 건물도 관람객이 와야 불을 켜고, 사람들이 빠져 나가면 바로 불을 끈다. 난방은 아예 생각도 못한다. 실내는 어둠뿐 아니라 한기까지 느껴진다. 이 정도면 일반 가정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나무를 베어다 때는 바람에 산들이 텅 비어 있다. 설사 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베어 쓸 수 없는 작은 묘목 수준일 뿐이다.

 

나무가 있다고 해서 바로 종이가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공장도 있어야 하고, 제조 기술도 있어야 한다. 그러니 여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종이의 수준이나 수급이 말이 아니다. 그런 북한 교육 현실에서 우리교육청이 보내준 종이는 매우 유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 전북의 교육가족들이 한푼 두푼 모아 보낸 종이라서 그 의미도 크다.

 

교육협력은 다른 분야의 지원과는 다르다고 본다. 교육이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기에 그 자체가 통일의 씨를 뿌리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낸 하얀 종이가 북한 학생들의 교과서가 되어 책상에 놓이고, 그 책이 열리는 만큼 북쪽의 마음도 더 열리게 될 것이다. 실제 교실에서 보여준 북한 교사들의 열정과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는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북쪽에서 우리교육청에 보내준 신뢰는 지원 액수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들도 그 의미를 인정했다. 전북교육청의 지원은 다른 어떤 지원보다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지원은 이제 시작이다. 북쪽에 대한 막연한 동정이 아니라 미래의 통일 인재를 키우겠다는 자세로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에 보내는 교과서 용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통일로 날아가는 종이비행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