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 수능시험을 치른 학생들을 대할 때마다 왠지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이 학생들은 먹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그리고 자고 싶은 것도 모두 참고, 오직 대학입시라는 목표만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뛰어 왔다. 그러나 수능이 끝나고 1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그들을 보노라면 가슴이 무겁고 답답하기 만 하다.
나는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라는 말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많은 고생 끝에 얻은 결과가 값지고 오래 남음을 자주 강조하며 무엇보다 <노력> 을 독려해왔다. 때문에 대학입시에 대한 그들의 질문에 무슨 말로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안타까움이 앞선다. 물론 세상을 살다보면 이른바 ‘운’에 좌우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복권이나 로또에 당첨되어 인생이 바뀌었다는 소리를 듣고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나 않을까 상상이나 꿈속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노력>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만큼은 교사나 학생 모두 노력보다는 요행을 바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합리적이고 건전한 사고를 갖도록 지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앞서야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수능에 대해여 논란이 많은 듯하다. 수험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아직까지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등급제에서 생길 수 있는 불운(?)이 자신에게 발생하지나 않을 까 불안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면 여기서 수능 등급제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예를 들어 A학생은 언어:100(1등급:36점) 수리:98(2등급:40점) 외국어:100(1등급:36점)이고 B학생은 언어:92(1등급:36점) 수리:100(1등급:45점) 외국어:96(1등급:36점)이라고 할 때, A학생(298:112점)은 B학생(288:117점)에 비하여 총점에서는 10점을 더 얻고도 대학입시에서는 5점을 손해 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또 C영역이 5등급(63점-50점) 6등급(49점-40점)이라고 한다면, 5등급 상위와 하위의 점수 차 13점이 대입에서는 같은 점수가 되고, 5등급 컷 50점과 6등급 상위 49점과의 차 1점이 대학에 따라서는 5점 이상의 차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드물겠지만 최악의 경우 6-7개 모든 영역에서 같은 결과 나올 수도 있어, 이런 경우 6× 13점= 78점의 차이가 등급으로 환산해서는 같은 점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교육에서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를 <노력>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나타난 현상이 학생들로 하여금 인생의 중요한 일이 노력이 아니라, 요행이나 운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이 앞서도록 영향을 준다면 이것은 국가의 장래를 생각할 때 심히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력>
무엇보다 "내 노력 내 땀이 아니면 내 것이 아니다."라는 보다 건전하고 성스러운 교육에서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지나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우리는 노력은 하지 않고 좋은 결과만을 바라거나, 내 잘못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주위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려버리는 사회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우리 학생들에게 자칫 혼돈되고 그릇된 가치에 빠지도록 하는 현상을 가져 올 수도 있는, 이른바 등급제 입시에 대해 우리 모두 깊은 관심 속에서 크게 고뇌해봄이 적절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언하는 바이다.
/전형곤(전주한일고 영재학습지도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