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공무와 관련된 편지형식의 문서

공함(公函)

1908년 고부 경찰분서장이 최희경에 보낸 공함. (desk@jjan.kr)

이메일이 보편화한 마당에 손으로 정성스레 쓴 편지를 받기는 참으로 드물다. 편지라고 해야 세금납부에 관한 것이다 각종의 초대장이 대부분이니 시대에 따라 편지가 가지는 사회문화적 의미도 참 많이 변하고 있는 듯하다. 좋던 나쁘던 궁금한 소식을 전하거나, 철학적 담론을 주고 받던 옛 선비들의 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키보드 자판에 두드려지는 몇 글자가 죄를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편지에서 이메일로의 진화는 그 속도만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고문서들을 보면 과거 합격증이나 관직 임명장인 교지와 세대 구성원을 정리한 호구단자 등이 흔히 볼 수 있는 고문서이지만, 간찰(편지)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양반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에서 간찰은 양반임을 증빙할 수 있는 또하나의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부를 묻는 편지들이 대부분이고, 일부 학문적 논쟁이 오고가는 유명한 편지글들이 전해져 온다. 혹은 죽은 남편을 애절하게 그리워 하는 편지가 무덤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업무를 컴퓨터와 인터넷 망을 통해서 처리하는 지금 사실 이메일은 편지의 기능 보다 업무 영역의 기능이 더욱 더 크게 확장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메일과 공적으로 사용하는 메일을 구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메일이 단순한 메일이 아닌 업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얼마전 미국에서는 모든 공무원들에게 이메일을 공적인 업무근거로서 남기도록 하는 조처를 취하였다. 전자문서를 시스템적으로 송수신할 수 없는 기관들에게 있어, 또한 업무협의를 하기 위해서 이메일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조처는 정식의 문서형식을 갖추지 않는 다양한 업무 행위에 대해 공적인 신뢰성을 부과함으로써 업무처리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의적이 조처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편지형식의 글을 정식의 업무처리에 활용하고 있었으니, 그런 문서를 공함(公函)이라 한다. 공함이란 공무와 관련하여 주고받은 편지를 말한다. 공문서와 같이 일정한 서식이 없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매체였다. 1908년 전라도 고부군 경찰분서장과 군수, 감독, 학무위원 등이 최희경에게 보낸 공함을 보면, 당시 고부군에는 광화교(匡和校)가 설립되어 근대 교육이 실시되고 있었으나 학생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경찰분서장 등은 그 이유가 한문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그 원인이라 판단하고 한문과를 설치하는 것이 어떤지 지역의 유지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러한 공함이 아주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며, 관원들 상호간에 업무협의를 위해 오고간 것이지에 대해서도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렇지만 한말 이와 같은 편지형식의 문서들이 공적 업무에 활용되고 있었던 점을 보면 업무를 추진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메일을 공적업무의 기록으로서 포함시켜야 하는 전향적이고 선진화된 제도 도입이 필요할 때이다.

 

/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