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난해한 당신의 소설들을 읽고 난 후, 때마침 싸르락거리며 내리던 첫눈을 기억합니다. 낡은 기와집의 깨진 유리창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겨울바람을 맞으며, 난 유태인도 독일인도 아닌, 유대교도 기독교도 아닌, 아버지의 아들도 어머니의 아들도 아닌, 그러면서 일반인도 예술인도 아닌, 그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못해 불안한 당신의 존재를 안타까워했지요.
프라하의 낡은 성벽 안엘 마치 물방울 속에 갇힌 사람처럼 굴러 들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소통의 부재와, 어떤 곳에도 안주할 수 없었던 어정쩡한 모습으로 인해, 발끝에서부터 차츰차츰 딱딱한 나무토막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그대의 망연함을 느껴봅니다. 고독한 이방인에게 혼절할 것 같은 동질감으로 괴로웠던 그 순간, 당신은 천진난만한 한 소녀를 문학이라는 비밀의 정원으로 이끌어가 주었지요.
밑바닥 삶의 애환과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타인들을 끝까지 무표정한 모습으로 지켜봐야하는 현대인들의 비애(悲哀) 때문에 흑백 사진 속 당신의 얼굴엔 터져버린 동공처럼 붉은 피눈물이 흐르고 있군요.
네, 그 겨울날의 첫눈이 오늘 내리고 있습니다.
/문찬미(군산나루문학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