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다섯가지 유형의 주유소 - 고영곤

고영곤(농협대학장)

마침내 막을 내린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은 진보와 보수, 평화?개혁과 수구?냉전, 좌파와 우파, 진실과 거짓, 이념과 경제, 성장과 분배, 일군과 말군 등 참으로 많은 개념들을 동원하여 지지를 호소했다. 선거를 보며 필자는 토마스 프리드만의 베스트셀러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연상했다. 혹시 이번 선거가 세계화?부?풍요?물질적?미국적인 것의 상징인 렉서스와 이념적?전통적?민족적?정신적?가치지향적인 것의 상징인 올리브나무의 대결은 아니었는가 생각되면서 국내에서도 많이 읽힌 그 책에 나오는 다섯 나라 주유소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들 나라 주유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일본이다. 기름 값은 5만원. 4명의 종사원이 유니폼에 흰 장갑을 끼고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다. 이들은 차에 기름을 넣어주고 유리창을 닦아주며, 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미소를 머금고 손을 흔들어 배웅한다. 둘째는 미국이다. 기름 값은 1만원이고 주유소와 편의점을 근무자 1명이 맡는다. 손님은 차에서 내려 손수 기름을 넣고 카운터에 가서 기름 값을 내야한다. 물론 유리창도 안 닦아준다. 운전석에 앉은 채 편한 주유를 원하면 비싼 기름 값을 내야한다. 제3형은 서구형이다. 기름 값은 5만원. 일주일에 35시간 일하고 하루 90분의 점심시간에는 주유소를 닫는 종업원 1명이 일한다. 그의 형제들은 길 건너에서 장기나 낮잠을 즐긴다. 그들은 지난 10년간 직업이 없으나 정부의 실업수당으로 살아간다. 주유소 직원은 항상 투덜대며 손님 차에 기름을 넣어준다. 네 번째는 개도국형이다. 여기에는 대부분 친인척인 15명의 종업원이 있지만 손님이 와도 자기들끼리 잡담하고 떠들기 바쁘다. 여러 대의 주유기 중 고장 없이 실제로 작동 되는 건 한 대 뿐이다. 주유소 주인은 이방인이고 이익만 챙겨간다. 종업원의 절반은 주유소에서 기식하며 세차시설로 샤워를 한다. 기름 값은 정부보조 덕분에 5천원이다. 주유소 고객은 최신형 벤츠 아니면 스쿠터이다. 끝으로 공산국형 주유소다. 기름 값은 5천원이지만 이 값으로는 한 방울의 기름도 못 넣는다. 4명의 종업원이 기름을 몽땅 암시장에 내다 팔았기 때문이다. 종업원이 4명이지만 실근무자는 1명이고 3명은 지하경제의 부업활동에 종사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주급을 받으러 나온다.

 

이들 주유소는 각각 국가경제시스템을 상징한다. 비교적 저임금이지만 종신고용 혜택이 있는 고물가의 일본경제, 고임금이지만 관대한 사회복지를 위해 고율의 세금과 고물가를 감내하는 서구 모형, 사회정의 같은 건 아예 도외시한 채 오직 양질의 저가상품 공급에만 관심이 있는 기업들의 미국형경제, 자본? 기술이 부족하고 저임금 저물가이며 친인척이 얽혀 공사 구분이 없는 후진국형,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는 암시장이 판치는 공산국 모델의 상징적 비유인 것이다. 과연 우리의 시스템은 어떤 것인가. 혹시 이들의 단점을 골고루 지니고 있는 건 아닌가. 어느 후보가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제거할 수 있는가. 이제 국민의 선택은 끝났다. 승자에겐 축하와 함께 초심을 지키라는 충고를, 패자에겐 위로와 함께 새 출발의 격려를 보낼 때다. 그러나 바람직한 한국형 주유소를 바라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데는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기를 기대해 본다.

 

/고영곤(농협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