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하면 명장 데이비드 린 감독이 1957년에 제작한 동명의 영화로 잘 알려져 있고, 영화주제곡인 ‘콰이강의 행진’은 그 경쾌한 멜로디 때문에 세대를 넘어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차 대전 당시 미얀마 양곤과 태국 방콕을 잇는 철도건설에 있어 콰이강의 다리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941년부터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얀마, 태국을 점령해갔다. 그러나 1942년 이후 연합군의 반격으로 해상보급로가 위협받기시작하자 육로를 통한 보급품 공급 작전을 구상하였고 그래서 콰이강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건설하게 된다. 철도 건설에는 연합군포로가 동원되었다. 열대 밀림의 무덥고 습한 기후, 말라리아와 콜레라의 창궐 그리고 극도의 굶주림, 이런 환경에서 끊임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연합군 포로는 여기서만 2만여 명이 희생됐다.
그 지옥 한가운데 우리민족의 희생도 있었다. 당시 일본군은 연합군포로의 노역을 관리하기위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조선전역에서 색출한 2700여명을 동남아 전선으로 보냈다. 조선인 군속들은 일본군으로부터는 식민지 신민으로서의 학대를, 연합군포로로부터는 비난을 동시에 받아야했다. 전후 전범재판에서 일본군포로들은 일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속속 감형되어 가석방되었으나 조선인은 연합군측으로부터는 일본군군속으로, 일본군측으로부터는 제삼국 또는 무국적자로 취급되어 고통 속에 한 많은 인생을 마쳐야했다.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원혼이 깃든 그 다리위에는 이제 관광객들만 한가로이 오가고 있다.
무상(無常)을 관(觀)해야 한다. 욕망과 어리석음이 만든 생각에 붙잡히면 거기에 지옥이 있다. 대립과 갈등의 이 모든 불행한 역사는 집단이기적 욕망과 자기중심적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않은 한 대립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좁은 우리나라 땅은 물론 지구촌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평화로운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무상함을 보지 못한 채 세계는 욕망으로 불타고 있다.
아무리 시비와 다툼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한낱 허상일 뿐이다. 콰이강 다리밑에 강물이 그 참혹했던 전쟁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유유히 흐르고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생각을 놓고 살기를, 새해를 맞으며 기대해본다.
/회일(참좋은 우리절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