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는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이자 언론인인 앙드레 고르(1923∼2007). 경제 전문기자이자 탐사취재의 대가로 명성을 날린 그는 일자리 나누기와 최저임금제의 필요성을 역설한 선구적인 노동이론가이기도 하다. 산업시대의 노동중심성이 종말을 고하고 글로벌 경제, 정보화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견한 그를 사르트르는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쓴 「D에게 보낸 편지」(학고재)는 땡전 한 푼 없는 유대인 고르와 극단 배우였던 미모의 영국 처녀 도린과의 사랑과 삶이다.

 

‘D’는 1947년에 만나 49년에 결혼한 ‘도린’의 머릿글자. 아내가 척추수술 후유증으로 불치병에 걸리자 그는 1983년 이래 공적인 활동을 접고 20여 년간 간호했다. 그리고 2007년 9월 22일 파리의 동쪽 시골마을 자택에서 아내와 동반자살했다.

 

고르 부부는 ‘내성적이고 지적인 남편에 비해 도린은 사교적이고 활당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고르가 ‘화가’였다면, 도린은 그에게 ‘영감을 주는 모델’이었던 것이다.

 

‘어느 사랑의 역사’란 부제가 붙은 「D에게 보낸 편지」는 고르가 죽음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바친 연서(戀書)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 1년 전, 고르는 아내와의 첫 만남부터 최근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한 통의 긴 편지를 썼고, 이를 본 지인들의 권유로 그 글을 출판하게 됐다.

 

소설가 김훈이 “아, 나는 언제 이런 사랑 한번 해보나”라고 했던 책.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아름다운 사랑고백이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