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다시 아이들에게서 배우자 - 유혜숙

유혜숙(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언젠가 인수위원회의 교육정책을 놓고 찬성쪽과 반대쪽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텔레비전 토론회를 밤늦게까지 지켜본 적이 있다. 두 시간여 동안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진행된 토론회의 결론은, 보통 그렇듯이 이번에도 시청자인 국민에게 여지없는 실망감 안겨주기였다. 그나마 통쾌하게 건진 한 마디가 있어 위로를 삼았으니, 방송 도중 시청자 전화연결 코너에 한 고등학생이 전화를 걸어 짧지만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한마디를 남겨 준 것이다.

 

“학생 입장에서 정책을 만들어 줄 수 없나요? 갈팡질팡 힘들어 죽겠습니다. 너무 막연합니다.”

 

토론을 이끌어 가는 명 진행자도 그 쟁쟁한 토론자들도 순간적으로 놀라고 민망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렇다. 교육 정책에 가장 민감할 대상은 피교육자인 학생일 것인데 우리 사회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 피교육자에 대한 배려나 고민 없이 너무 일방적인 견해로만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찬성쪽도 반대쪽도 모두.

 

그래서 내가 아는 한 논술 선생은 학생들에게 텔레비전 시사토론은 절대 보지 말 것을 당부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에 도움이 되지도 않으며, 또한 그것은 결코 토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실은 논술 선생이 아니라도 텔레비전 토론회 프로그램을 보아 온 사람이라면 큰 무리 없이 동의할 수 있는 의견일 게다. 두 시간여 동안 줄곧 자기주장만 할 뿐,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또한 자신의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시키지도 않으니 시청자들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이는 분명 일방통행식 사고와 행동이 가져온 극명한 결과다.

 

물ㆍ모래 놀이가 한창인 유치원놀이터를 보자. 어른들의 토론회에 비하면 백분의 일 밖에 안 되는 시간 안에 토론 혹은 토의의 목적을 원활히 달성하고 있다.

 

A : 야, 이쪽으로 물이 내려가게 파자.

 

B : 야, 아니야, 그쪽은 동생들이 다니니깐 안돼~ 이쪽이 안 다니니깐 여기 파야 돼!

 

A : 동생들이 다니는데 왜 파면 안 돼? 거기는 커서(높아서) 물이 안 가져.(안 내려가)

 

B : 그렇지만 동생들 신발이 물에 다 젖으면 어떻게 해.

 

A : 거기 파려면 시간 오래 걸려서 싫어, 힘들어.

 

B : 우리 다 같이 모여서 파면 돼지.

 

A : 아, 그렇구나. 알았어. 그럼 다른 친구들도 부르자.

 

얘들아, 여기 다 같이 모여서 팔 사람? (하며 친구들을 모은다.)

 

어떤 놀이를 할 때, 아이들도 서로 생각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다를 때가 있게 된다. 그러나 의외로(?) 쉽게 한 가지 놀이로 결정이 되고 다른 의견을 제시했던 아이들도 금방 수긍, 동조하며 정말 재미있게 어울리는 것을 늘 보며 산다. 일방통행이 아닌, 원활한 소통, 마음을 열고 듣기 때문이다. 그런나 그런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른바 교육이란 것을 계속 받으면 오히려 사고가 경직되어 가고 급기야 성인이 되어 사회의 갈등에 접어들면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용납지 않는 영락없는 ‘어른’이 되고 만다.

 

이 또한 우리 사회의 교육이 일방통행을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라는 단적인 증거이지 않을까. 일방통행은 도로여건상 도저히 교행할 수 없는 좁은 도로에서 교통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도로 시스템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2차선 도로나 4차선 도로마저 일방통행으로 쓰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 때와 달리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지금 우리의 모든 것을 증거 할 수 있는 많은 자료들 - 신문이나 뉴스는 말 할 것도 없고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의 글 등등까지-이 그대로 다 보관 되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듯 지금의 우리 사회를 한 치 오차 없이 부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오싹하다. 추적과 증명이 가능한 과거를 두고 과연 몇이나 제 발 저리지 않고 한 점 부끄럼이 없다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4차선 도로와 같이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왜 다 가로막고 한 방향으로만 가지 못해서 안달을 내다가 이 모양 이 꼴을 우리에게 넘겼느냐 추궁한다면 이도 다 빠지고 허리도 굽은 우리들이 뭐라 해명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의사소통의 민주주의를 시작할 때라고 본다. 그 방법을 가르칠 수 있는 최고의 선생은 아이들이다. 논리가 정연해서도, 배운 것이 많아 아는 것이 많아서도, 지능이 어른보다 우수해서도 그 무엇 때문도 아니다. 다만 우리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있다. 뒤를 돌아볼 수도 없는데 시야의 좌우마저 다 가리고 앞만 보고 죽어라 달리도록 종용되는 경주마 같은 어른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열린 마음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있다. 남 얘기를 경청하고 그리하여 내 의견을 수정하면 똑똑치 못한 사람, 능력 모자란 사람 취급받는 어른들 세계의 깊은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아이들의 들어 주는 귀, 열어 놓는 마음을 배우는 것이다. 아니다. 본래 지금 어른들도 어려서는 그리했었다. 그러니 다만 그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보자. 일방통행의 강자가 사회의 강자가 될 수 있다는 마음 아픈 믿음을 버리는 길을 찾아보자. 하루만이라도 우리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제발 깨달았으면 좋겠다.

 

유혜숙 의장은 1987년, 코끼리 유치원을 설립,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어린이 환경교육과 안전한 먹을거리에 관심을 갖고 어린이 환경학교장, 전북 청소년 활동 지원센터 운영위원장, 전주지방환경청 교육홍보 강사, 얘들아 하늘밥 먹자 대표, 전주시 학교급식 심의위원, 전북학교급식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유혜숙(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