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 악법도 법이다 - 안봉호

안봉호(군산본부장)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BC 470∼399)는 ‘악법도 법이다’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당시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숭배하는 신들을 숭배치 않고 새롭고 기이한 종교의식을 유포했으며 젊은이들을 정신적 윤리적으로 오염시킨 죄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자 주변의 탈옥권유에도 이 말과 함께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했는지의 여부에 대한 논란이 현재 일고 있지만 이 말은 ‘분명히 ‘아무리 불합리한 법이라도 지켜져야 한다’는 격언임에 틀림이 없다.

 

불합리하다고 주관적으로 판단돼 개정의 목소리가 높은 법이 어디 한 두가지인가.

 

그런데도 사회적 약속인 법은 반드시 준수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악법도 법’이라는 격언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사이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최근 군산항만에서 환적화물인 중국산 버스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상해에서 생산돼 청도를 통해 군산항에 반입됐다가 사우디아라비아등 중동지역으로 다시 수출되는 버스를 자동차 전용부두가 아닌 다른 부두에서 처리하는 게 옳은가, 그른가하는 문제다.

 

중국산 환적화물을 다른 항만이 아닌 군산항에서 처리하는 만큼 군산항의 활성화를 위해 5부두 어느 부두에서든지 취급하면 되지 않느냐는 일부의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군산항에는 합리적이든 불합리하든 지켜져야 할 항만시설운영세칙이 있다.

 

지난 1993년에 제정, 모두 16차례에 걸쳐 개정된 이 세칙은 항만법에 따라 항만시설의 관리· 운영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세칙 5조는 5부두는 청정화물과 액체화물외에 51·52번선석은 자동차· 펄프, 53·54번선석은 컨테이너· 목재류· 일반산화물· 펄프, 55·56번선석은 곡물류· 목재류· 펄프, 6부두의 63·64번선석은 컨테이너와 세미컨테이너등 부두별 이용화물을 규정해 놓고 있다.

 

부두운영회사제도(TOC)가 지난 1997년부터 시행된 후 임대료를 내고 부두를 사용하는 군산항 하역회사들은 부두별 취급화물에 맞춰 보다 많은 화물유치를 위해 운영부두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왔다.

 

지원시설인 싸이로와 창고등을 건립했고 때로는 부두를 축조했으며 가장 현대적인 하역시설을 설치해 놓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부두별 취급화물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항만시설운영세칙은 무의미해지고 부두운영회사들이 창고와 부두등에 굳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필요가 없게 되는등 기존 항만질서가 어지럽혀지게 되고 아울러 TOC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이 세칙도 효율적인 항만운영을 위해 필요할 경우 부두별취급화물을 조정할 수 있다고 예외규정을 두고 있기는 하다.

 

즉 일시적인 화물폭주등으로 인해 부두운영상 필요한 경우 부두별 취급화물의 규정에도 다른 화물을 일시적으로 취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그렇치 않다.

 

중국산 버스가 일시적으로 수천대에 달해 화물이 폭주, 자동차 부두에서 소화하기가 곤란하다면 군산항의 활성화를 위해 굳이 자동차부두가 아닌 다른 부두에서도 취급할 수 있지만 현재 300대에 불과하다.

 

영업의 이익을 위해 물동량의 유치에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는 하역사의 입장에서 볼 때 항만시설운영세칙이 불합리한 악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은 준수돼야 한다. 그렇치 않을 경우 항만질서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안봉호(군산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