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기다림이 용기다 - 김정수

김정수(전주대교수·극작가)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그림동화가 있었다. 서로 밀치고 밟고 밟히며 정상에 오르려고 기를 쓰는 애벌레의 탑…, 일찍이 회의를 느끼고 그 속을 빠져나와 자기 안의 나비를 키워내는데 집중한 노란 애벌레에게 남친 줄무늬 애벌레가 말한다. “넌 무언가 알고 있었지, 그렇지? 기다림이 곧 용기였던가?” 정상에 오르면 밀려 떨어지게 되어있는 무의미한 욕망의 탑이 갖는 상징성과 함께, 노란 나비의 결단과 변모는 우리에게 삶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라 권유한다.

 

최근 여행 중에 한 박물관에 들렀다. 방학이라 가족단위 관람객이 눈에 띄게 많았다. 참 좋아 보이는 풍경이다. 재미있는 일은 상당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뭔가 박물관적으로 엄숙하게 설명해야하는 강박을 갖는 것이다. 몸이 근질근질한 아이들을 붙잡고 좋은 부모, 자상하고 지적인 엄마, 아빠가 되고자 결연한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분주한 아이들은 실랑이로 맞설 뿐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자기들 눈으로 세상을 공부한다. 그리고 어떤 때는 어른들 깜짝 놀랄 기억력으로 공부한 것들을 꺼내 놓는다. 아이들을 박물관에 데려온 것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지만, 이걸 봐라, 저 것에 집중하라, 강요하는 것은 부모의 노파심이고 억압이다. 폭력일 수도 있다. 좋은 부모는 때로 자식의 시행착오를 지켜보면서 성장을 기다려줄 줄 안다.

 

누수 없이 정권을 인수하자는 게 대통령직 인수위의 가장 큰 목표다. 그런 인수위가 요즘 영어교육전도사 같은 발언들을 쏟아놓는다. 아예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도록 하고,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이 수능 외국어영역을 대체하는 2013학년도 입시부터 입시생들이 공교육만으로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한다. 국제 경쟁력 확보와 사교육 문제 해소란다. 다 좋다. 허나 정권 인수에 영어교육 문제가 그리 다급한 것이었던가? 한국사나 국어 교육은 그리 다급하지 않은 것인가?

 

교육에 대해 가슴 깊이 고뇌하고, 교육 현장 상황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준비하고 있는 연구결과를 기다려볼 필요도 있다. 차제에 우리가 영어 못해서 얼마나 많은 경쟁력을 잃었는지 증명해 보인다면 좋겠다. 가슴에 손을 얹고 영어가 정말 절실히 그 자체의 활용을 위한 것인지, 대한민국 백성의 우열을 가르는 척도로서 존재 가치가 더 큰 지, 그래서 오래 매달리기 같은 인내와 근력 테스트를 영어를 통해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사교육 문제가 공교육의 취약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사교육은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다툼이다. 공교육이 강화될수록 사교육은 더 극성을 부렸다. 사교육이 문제가 된다면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투적이고 경쟁적인 학습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려 노력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수위의 영어교육로드맵은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사교육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다른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마리라고 믿는 착시현상이다.

 

때로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통해서도 교육받는다. 그리고 교육이야말로 진정 기다림의 용기가 필요한, 대운하보다 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한 사업이다.

 

/김정수(전주대교수·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