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택의 알쏭달쏭 우리말] 싣다와 태우다

모든 바퀴는 이기(利器)다. 바퀴 안 달린 이기는 거의 없다.

 

바퀴의 상승 속도에 얹혀 구름 속 거미줄 같은 공로(空路)를 훌쩍 날아오르는 항공기, 무수한 바퀴 창자를 복잡하게 안고 있는 선박, 온갖 산업 동력기의 수많은 바퀴들이 그렇고, 육상 교통 수단의 온갖 바퀴들이 또한 그러하다.

 

24시간 대지를 시치고 누비고 공글리듯 하는 바퀴, 바퀴야말로 문명의 이기 중 제일가는 이기라 할만 하다.

 

날마다 엄청난 물동량(物動量)과 인동량(人動量)을 미친 듯이 실어나르는 바퀴를 없앤다면 세상은 당장에 앉은뱅이가 될 것이요, 도시는 급체(急滯)에 빠져 뻣뻣하게 죽어갈 것이다.

 

그러나 바퀴가 일으키는 어두운 면을 생각하면 그만 입이 다물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교통사고만 보아도 바퀴는 이율(二律)이 배반되는 성질 즉 두 개의 얼굴을 지닌 야누스성(性) 심술을 부리는 괴물이라고나 하겠다.

 

바퀴를 떠나 살 수 없는 우리들로서는 그저 바퀴를 ‘무서운 이기?’가 아니라 ‘이로운 이기’로 부리는 데 최선을 다 할 수 밖에는…….

 

그건 그렇고, 교통 사고 소식을 전하는 신문이나 방송의 보도를 보면 이따금 ‘싣다’와 ‘태우다’를 잘못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 바, “사고 열차는 400여 명의 승객을 싣고 가던 중이었습니다.”와 같이 말이다.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이런 맥락에서는 ‘싣고’가 아니라 ‘태우고’라고 하는 것이 옳다.

 

동사 ‘싣다’와 ‘태우다’는 그 기본의미가 유사하지만, 쓰이는 맥락은 매우 다르다.

 

행위의 객체가 동물이나 물건일 때에는 ‘싣다’를 쓰고, 사람일 때에는 ‘태우다’를 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