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교회의 하늘로 치솟은 뾰족 탑을 바라보거나, 큰 교회 담임목사님들이 타고 다니는 자가용을 바라보거나, 큰 교회로 몰려드는 사람을 바라보며 부러움으로 교회를 시작하면 바르고 좋은 목회를 하기 어렵지만 그 큰 교회를 이루기까지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차가운 교회당 바닥에 엎드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교인들을 위해, 어렵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또한 바른 목회자기 되기 위해 회개하며 흘린 그 눈물의 양을 보고 목회를 하면 아름다운 교회, 좋은 교회가 되어 갈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성공하여 누리는 혜택과 풍요로운 삶만 보고 평가하여 존경하거나 아니면 폄하하려 든다. 사실 우리나라 말에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폄하하려 드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 사람이 거기까지 이르느라 흘린 눈물과 땀의 양을 간과해 버린다. 훌륭한 피아니스가 되기 위해서는 손톱에 피가 나도록 연습에 연습을 해야 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부모 잘 만나서, 아니면 운이 좋아서 라고 말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자신은 노력하지 아니하고 부모 탓, 세월 탓, 운명을 탓하고 만다.
과연 그럴까? 옛날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라지만) 시절 등교길이나 달리기를 하다가 나보다 앞선 친구가 있으면 경쟁을 해 보다가 힘들거나 하기 싫어지면 주저 앉아서 이렇게 외치는 친구가 있다.
“앞에 가는 놈은 도적놈!, 뒤에 있는 사람은 순사!”
이처럼 우리는 나보다 앞선 사람이 있다면 열심히 뛰어가야 마땅한 일이다. 그를 따라 잡지 못한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야 그래도 발전이 있을 것이다. 주저 앉아서 앞에 가는 사람은 도적놈이라고 욕 한다고 해서 상황이 역전되는 것이 아닐진데, 사람들은 앞 선 사람의 노력이나 눈물이나 땀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남을 탓하거나 그를 폄하 하거나 욕하려 든다. 속은 후련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는 시간에 그 사람은 더 뒤처질 뿐일 것이다.
미국에서 케딜락이나 좋은 자가용을 타는 사람을 보면 청년들은 마음속으로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언젠가는 저런 차를 타고야 말리라”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쥔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다른 사람이 좋은 차를 타고 가면 부러움 보다는 욕이 앞선다. 더욱 고약한 사람은 밤중에 몰래 날카로운 것을 가지고 가서 그 차에 생채기를 만들어 놓는다. 글쎄 그래가지고 속이 후련할까? 아니 이런 사회가 어떻게 발전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전주를 그리고 전북을 사랑한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조상이 몇 백년을 여기 살았는지 계산 할 수 없을 만큼 이곳이 나의 고향이요 뿌리이다. 그런데 이 곳이 타 지역에 비해 자꾸 뒤쳐져 가는 것을 보면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해서 분기탱천하다. 또한 일반 사회뿐 만 아니라 교계에서도 전라도 홀대를 느낄 때 마다 격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앞서 가는 사람들을 뒤 따라 가려고 최선을 다했던가? 아니면 주저앉아 앞에 가는 사람을 도적놈이라고 욕했던가? 그놈 탓이라고 원망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가끔 전국규모의 큰 세미나를 참석해서 일부러 주차장에 자가용을 을 보면 어쩐 일인지 타 지역 차는 많이 보이는데 전북 차가 유독 적거나 거의 없다. 인구가 적어서라고 변명해 보겠지만 과연 그 이유만일까?
미국 사람들 중에는 경상도 말이 표준말인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 지역 분들이 많이 유학을 가고, 자녀를 위해 많이 투자한 까닭일게다. 또 남의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그럴 기회가 많았지만 놓친 것은 아닌가?
다시 한 번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원망과 탓하던 입술을 닫고 달려볼 일이다. 전북과 전주의 부흥과 영광을 꿈꾸며...
/이병우(전주예은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