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전주 콩나물국밥과 모주 - 이광연

이광연(한의사·경희대 외래교수)

심리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자가 바람을 피워도 본처에게 돌아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본처의 음식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의사인 내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 같다.

 

의학적으로 보면 사람의 입맛은 상당부분 어렸을 때(5세 미만) 집에서 먹던 음식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데 어렸을 때 집안의 음식 문화가 짜고 맵고 싱겁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평생 음식의 취향이 결정이 된다.

 

지리산 산골 남원에서 짜게 먹고 자란 나는 지금도 보통 사람들보다도 짜게 먹는 편이다. 어렸을 때 나는 막내여서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라서 버릇이 조금 없는 편이었다. 어머니가 밥을 형들하고 같은 상에 차려 주셔도 반찬이 좋은 할아버지 상에 밥그릇을 가지고 가서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할아버지는 진지를 드시기 전에 먼저 간장을 두 세 수갈 드실 정도로 엄청 짜게 드시는 분이셨다. 그때부터 나도 식성이 짜게 먹는 습관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음식문화는 다른 나라 음식문화에 비해서 소금섭취가 많은 편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소금섭취량의 2-3배가 넘으니 말이다. 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발효음식과 국물 음식 때문일 것이다.

 

한의사인 나는 진료를 하고 나서 환자들에게 짜게 먹지 말라고 주의사항을 당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면 사실 나도 한구석으로는 찔리는 느낌이 있다. 내가 짜게 먹는데 남보고 싱겁게 먹으라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신부님이 하라는 대로 살아가면 천당을 갈수 있으나 신부처럼 살면 천당에 못가고, 의사가 하라는 대로 살면 오래 살 수 있지만 의사처럼 살면 일찍 죽는다.”라고 한다.

 

어제는 전주 처가에 행사가 있어서 몇 개월 만에 전주에 다녀왔다. 토요일 오후 4에 진료를 마치고 대충정리 하고 서울을 출발해 전주에 도착하면 보통 저녁8시 정도 되는데 그때까지 휴게소에서 가급적 뭘 먹지 않고 내려간다. 그렇게 최대한 배고픔을 유지한 채로 내려간다.

 

왜냐면 전주에 콩나물 해장국과 모주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다.

 

술을 좋아하는 나는 내 고향 전주콩나물국밥과 모주를 서울에서도 자주 먹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서울에서 먹는 콩나물국밥은 2%가 부족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아서 나는 전주에 가면 꼭 콩나물 국밥을 먹고 오는데 그것도 한 끼에 두 그릇에 가깝게 먹는다.

 

얼마 전 어떤 외식업체 설문조사에서 조사를 한 것을 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해장국은 ‘전주콩나물국밥’이란 기사를 본적이 있다. 내가 생각해도 해장국엔 콩나물 해장국 만한게 없는 것 같다.

 

동의보감에 대두황권으로 소개되어 있는 콩나물은 “온몸이 무겁고 저리거나 근육과 뼈가 아픈 것을 치료하고 염증을 억제하며 수분대사를 촉진해서 술로 지친 속을 달래고, 땀을 내는 발한작용과 피로를 풀어준다.”라고 기록되어있다.

 

현대 의학적으로 보더라도 콩나물에는 단백질과 비타민, 각종 무기질이 많은데 특히 콩에서 싹이 나 콩나물이 되면 콩 자체에 없던 비타민C가 많이 생성되며 아스파라긴산은 알코올의 자연분해를 촉진시켜 숙취해소에 도움을 준다.

 

또한 막걸리에, 흑설탕, 감초, 생강, 계피, 대추, 찹쌀가루 등의 한약재를 넣고 끓여서 알코올 성분이 거의 없는 게 특징인 '어머니 술'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모주는 해장술로 불리는데 피로회복과 감기몸살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가금씩 서울에서 모주가 생각이 날 때면 전주에서 택배로 받아먹곤 한다.

 

이제 콩나물국밥과 모주 고향음식을 먹고 왔으니 내 몸과 맘은 한두 달 정도는 안정이 되고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광연(한의사·경희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