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신경림 시집 '낙타'

한국 시단의 거목 삶과 죽음을 노래하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로 시작되는 ‘가난한 사랑 노래’를, 나는 1998년 겨울 대학 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됐던 시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이 시에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란 부제가 붙어있었다는 걸 알고 무작정 이 시가 좋아졌다. 그리고 가난하기 때문에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사랑,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하는 가난한 젊은이를 위해 시를 썼을 시인이 무작정 좋아졌다.

 

중년의 나이에 이 시를 쓴 시인은 어느새 일흔 고개를 넘어선 한국 시단의 거목 신경림 시인이다.

 

오랜 기간 문단과 독자를 기다리게 한 그가 6년 만에 열번째 시집 「낙타」(창비)를 펴냈다.

 

‘낙타를 가고 가리라, 저승길은 / 별과 달과 해와 /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 손 저어 대답하면서, /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 (…)’ (‘낙타’ 중에서)

 

표제작이 암시하듯, 이번 시집은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깊은 비유와 편안함으로 물 흐르듯 전개되는 시들은 52년 시력을 안고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겪은 시인의 눈은 이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초월해 그것을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길떠남은 자연스레 여행으로 이어져, 여행시로 또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시집 말미에는 시인이 직접 쓴 산문 ‘나는 왜 시를 쓰는가’가 실렸다.

 

그가 시 쓰는 일에 처음 회의를 느낀 것은 문단에 나온 직후. 추천을 받은 작품은 순수 서정시였는데, 그 무렵 세상은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시인은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절망감이었지만, 내 시는 내 절망감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내 서정시는 내 마음을 정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못되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세상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가 시시해지고, 시 따위 쓰지 않으면 어떠냐 하는 건방진 생각조차 하게 되면서 시에는 더욱 게을러졌다는 시인. 시골로 귀향하면서 이 땅이 참으로 살기 힘든 곳이라는 사실도 비로소 절감하고 만약 글 쓸 기회가 다시 온다면 남이 아닌 이웃들의 정서나 설움, 얘기 같은 것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고 한다.

 

이번 시집 「낙타」의 시들을 쓰는 동안 그는 “시 작업이야말로 세계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시는 어쩔 수 없이 느린 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근래 두리번거리면서 느릿느릿 걸어간다는 생각으로 시를 쓴다”는 시인. 이 책을 읽다보면 그가 해찰할 때 해찰하고 그가 걸음을 멈추면 멈추고, 그렇게 시인을 따라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