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노블레스 말라드

언제부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 부와 명예를 거머 쥔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난듯 하다. 이는 ‘한국사회에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진정한 상류층이 있는가?’라는 역설과도 통한다.

 

프랑스어인 이 말은 ‘고귀한 신분(귀족)’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해진 것이다. 1808년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당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 등 어수선한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 유래는 훨씬 더 올라간다. 초기 로마시대가 모델이다. 그 때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기 로마사회는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헌납 등의 전통이 강했다. 이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최고 지도자인 콘솔(집정관)을 비롯 고위층은 전쟁의 선두에 나섰다. 이로 인해 귀족의 희생이 엄청나게 컸다.

 

또 프랑스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사례로 ‘칼레의 시민’을 꼽는다. 로댕의 조각작품으로 더 유명해진 이 이야기는 영국과 프랑스가 싸운 백년전쟁때 일이다. 1347년 영국은 북부도시 칼레의 끈질긴 저항으로 전쟁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그 책임을 물어 영국왕은 시민을 대표하는 6명을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러자 이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과 시장 등 6명이 자청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 도시의 핵심 인물로 부유한 귀족들이었다. 이들이 처형되려는 순간 왕비의 간청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결국 이들의 솔선수범으로 칼레시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요즘 이명박 정부의 각료 인선을 둘러싸고 여론이 분분하다. 대부분 부동산 투기, 불법증여및 탈세, 병역면제, 이중국적, 논문표절, 과거 전력 등 의혹도 가지가지다. 벌써 15명의 장관 내정자중 3명이 사퇴했다. 이 나라 지도층의 도덕성이 이렇게 추락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들을 보면서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 즉 병들고 부패한 귀족이라는 비아냥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지도층이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