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중국 하얼빈의 어느 신축 아파트에 묻혀있다는 보도는 우리를 무척 우울하게 하고 있다. “ 코레아 우라”란 러시아 말로 대한민국 만세란 뜻이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30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난후 전 세계를 향해서 우렁차게 외친 한마디가 “코레아 우라”였다.
그는 하얼빈 역에서 거사를 성공시킨후 니콜라이 미트로파노비치 기병 1등대위등 러시아 장교들에게 체포된후 곧바로 철도 헌병대 분실로 연행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제물이된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에서는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 通),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와 더불어 유신(維新) 3걸중의 한사람이었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메이지 유신이후 4번의 총리대신, 조선 초대 총감, 그리고 일본 추밀원 의장 4번 역임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어찌보면 일본 근대사의 산증인이다. 안중근 의사가 왜 다른 인물이 아닌 이토를 죽일 수밖에 없었는가는 15가지 이토의 죄목속에 잘 나타나있다.
이중에서도 우리눈에 띄는 대목은 이토가 1895년 무장 병력을 동원 왕궁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살해케 했다는 점, 그리고 1905년 군대를 이끌고 왕궁에 들어가 고종을 위협하여 5개조 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다는 것이며, 여기에 분노해 의병을 일으키자 양민 10만여명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또 동양 평화를 교란했다는 점등이다. 이토가 1909년 6월14일 한국통감을 그만두기 까지 3년 반동안은 한일합방을 위한 준비를 한 것이다.
이토가 하얼빈을 방문한 목적은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만나 한국합병을 러시아에 알려 양해를 구하고 만주의 이권을 러시아와 일본이 나누어 가져 미국의 진출을 억제하자는데 있었다. 이처럼 19세기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국제 정세속에서 우리 조선은 그저 하이에나에 포위된 누의 신세였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巨事)는 단순 우리만의 쾌거(快擧)가 아니라 중국인에게도 자극을 국제적 사건이었다.이제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중국과 교섭을 하여 코레아 우라의 주인공,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발굴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