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이성부 시인의 '봄' 이란 시다. 봄은 금방 올 것 같으면서도 여기 저기 한눈을 판다. 그러다 어느 틈엔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선다. 지금 이맘 때가 꼭 그런 시기다.
봄은 자연계 뿐 아니라 인간세상에도 온다. 정치인들이 실컷 싸우다 화해무드에 들거나, 경제가 잘 돌아가면 '봄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봄은 소생, 약동, 탄생, 부활 등의 이미지로 곧잘 쓰인다.
실제로 아지랭이, 봄비, 봄나물, 봄밤, 봄하늘, 봄바다, 봄바람, 봄동산, 봄나들이, 봄잔치, 봄놀이, 봄처녀, 봄맞이 처럼 '봄'이 붙는 말은 봄 향기와 더불어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
가람 이병기는 이맘 때의 봄볕을 이렇게 그렸다. "보리잎 포릇포릇 종달새 종알종알/ 나물캐던 큰 아기도 바구니 던져두고/ 따뜻한 언덕머리에 콧노래만 잦았다.// 볕이 솔솔 스며들며 옷이 도리어 주체스럽다./ 바람이 한결 가볍고 구름은 동실동실."
또 맹사성은 "강호(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고 했고 정도전도 "봄이란 봄의 출생이며, 여름이란 봄의 성장이며, 가을이란 봄의 성숙이며, 겨울이란 봄의 수장(收藏)"이라고 했다.
봄의 찬미는 서양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시인인 R.W.에머슨은 "60이 된 지금에도 봄이 오면 내 가슴은 두근거린다"고 했고 독일 시인 H.하이네는 '즐거운 봄이 찾아와'에서 "그때 내 가슴에는/ 사랑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였네"라고 노래했다.
한자로 春(춘)은 원래 艸(풀 초) 밑에 屯(모을 둔)자를 놓고 日(날 일)을 받친 글자다. 햇볕(日)을 받아 풀(艸) 싹이 많이 움 터(屯) 나오는 때, 곧 봄을 뜻한다. 또 오행에서 봄은 목왕지절(木旺之節)로, 목기(木氣)가 성한 때다.
이처럼 봄은 좋은 의미로 쓰이지만 변덕 또한 심한 계절이다. 기상이 불안정해 일교차가 크고 황사현상 등으로 사람을 괴롭히기도 한다.
요즘 정가에선 4·9 총선을 앞두고 공천자 발표에 촉각이 곤두 서 있다. 이를 기다리는 정치인들에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요 '잔인한 계절'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