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택의 알쏭달쏭 우리말] 언어의 간섭과 접촉

외국인이 쓰는 한국어가 한국인이 쓰는 한국어와 달라보이는 것은 그 외국인의 모국어가 새로 배운 한국어에 간섭하기 때문이란다.

 

이러한 언어간섭은 두 자연언어가 접촉했을 때 그 효과로 한쪽 또는 양쪽 언어에서 일어나는 규범이탈이나 규범변경을 가리킨다. 이때의 간섭은 어떤 특정 개인만이 아니라 모국어를 그와 공유하는 화자 집단 전체가 겪는 간섭이다.

 

19세기 끝머리 이후로 한국어에 가장 크게 간섭한 자연어는 일본어이다. 1945년까지는 일본어와의 접촉이 한반도 주민집단 대부분에게 열려 있거나 강요되었고, 그 뒤에도 일부 지식인들을 통해 그 접촉이 계속되었으니, 간섭의 흔적이 큰 것은 당연하달 수 있다. 그 간섭은 특히 한국어의 한자어 계통 어휘부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그래서 그 전까지 중국어의 그늘을 짙게 드러냈던 한국어 한자어들은 오늘날 일본어 쪽을 훨씬 더 닮게 된 것이다.

 

예컨대 한국어에서 '생산(生産)'은 본디 '아이를 낳는 일' 곧 '출산'의 뜻이었으나, 이젠 일본어 '세이산(生産)'의 쓰임새에 간섭을 받아 '인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을 뜻하게 되었다.

 

남의 아내를 점잖게 이르는 말이었던 '실내(室內)'도 이젠 그런 의미를 거의 잃어버리고 일본어 '시쓰나이(室內)'의 간섭으로 '방안, 집안'을 뜻하게 되었다.

 

이런 예는 수두룩하다. 몇 개만 더 살펴보자.

 

'마음속'을 뜻했던 '중심(中心)'은 일본어 '주신(中心)'의 간섭으로 '한가운데'를 뜻하게 됐고, 막 결혼한 여성 곧 '새댁'을 뜻했던 '신인(新人)'은 일본어 '신진(新人)'의 간섭으로 본디 뜻을 거의 잃어버리고 '어떤 분야에 새로 들어온 사람'을 뜻하게 됐다. '방송(放送)'도 본디 '죄인을 풀어줌'의 뜻이었으나 일본어 '호소(放送)'의 간섭으로 '새소식이나 오락물을 전파에 실어 내보냄'을 뜻하게 됐고, '발명(發明)'은 본디 '죄가 없음을 말하여 밝힘' 곧 '변명'의 뜻이었으나. 이젠 그런 용법은 사극에서나 볼 수 있을 뿐 일본어 '하쓰메이(發明)'의 간섭으로 '새로운 기술이나 물건을 만들어 냄'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