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활동을 지원ㆍ육성하기 위해 정부출연으로 설립된 학술진흥재단은 지난해 9천500억여원의 사업비를 지출할 정도로 규모가 커 심사에서 탈락한 교수나 대학의 정보공개 청구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강철구(60)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가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강 교수는 2005년 3월 학진이 연구비를 지원하기 위해 주관한 `2005년도 기초학문육성 인문사회분야지원사업'에 연구계획서를 제출했다가 본심사에서 탈락하자 학진이 지원을 결정한 서양사 분야 4개 프로젝트의 연구계획서와 예비 심사서, 본심사서, 종합심사 의견서의 공개를 재단에 청구했다.
하지만 재단은 "연구계획서는 지적재산권 침해의 우려가 있어서, 심사결과서는 작성자의 연구결과 및 심사자의 학문적 소견이 담겨 있어 작성자과 심사자가 동의해야 하는데 이들의 의견을 조회한 결과 비공개하기로 했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재단은 또 "이 사건 심사는 시험보다 더 고도의 주관적 평가로 이뤄진 것이고, 이를 공개할 경우 심사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어 정보공개법상 비공개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연구계획서는 신청요건상 연구과제로 선정되면 공개가 필연적으로 예정돼 있고, 표절이나 도용은 학문적 탐구와 비평을 통한 자정이나, 손해 발생시 사법적 절차에 따라 통제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비공개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심사결과서에 대해서도 "심사위원의 학문적 소견이 들어있어도 저작물또는 2차 저작물이라고 볼 수 없고, 심사위원 위촉을 수락한 이상 결과가 공표되는 것을 어느 정도 용인했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막대한 정부예산이 지원되는 사업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충동이 상당한 정도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며 "심사과정의 투명성이 결여된다면 객관성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의 항소에 이유 없다며 기각했고,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강 교수는 "그동안 학진의 연구지원사업 선정과정에서 불공정심사 의혹이 있어도 관련 서류를 일체 공개하지 않아 어떠한 개선의 방법도 없었다"며 "새로운 판례로 불합리한 심사제도가 개선되고 한국 교수사회의 자정에도 한 몫을 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