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는 15일 '학교 자율화 3단계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초·중·고교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29개 지침을 이날 즉시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0교시 및 심아 보충수업을 할 수 있고 초등 방과후 학교에서 정규교과 수업을 할 수 있으며 수준별 이동수업이나 우열반 편성 도 시,도교육청이나 학교장의 결정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과 같은 사교육만능의 교육현장을 학교로 끌어 들으로써 사교육시장에 들어가는 교육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다. 시골 농,어촌 등 대부분의 학교를 고려에 넣지 않고 서울등 대도시의 경우만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었다고 한다면 반론을 제기 할 것인가. 교육의 수단은 먼저 어떤 인간을 기를 것인가를 상정해야 한다.
목적이 바뀌면 수단도 바뀌게 마련이다. 옛날처럼 단편적인 지식과 기술이 생계수단이었던 그런 시대 같으면 또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를 벗어나 정보사회다. 고도의 지식과 정보를 일부 지식인들이 독점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어느 정도의 수준이면 인터넷에 들어가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잇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때의 교육 목표는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이처럼 넘치는 정보를 이용할 줄 알고 거기에 자기 욕구를 반영할 줄 아는 창조성이다. 이 창조성은 0교시 수업이나 심야 보충 수업 같은 저질 다량학습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이 창조성을 기르는 길은 창조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길이다. 이 창조과정은 예상과 성취와 실패의 연속 과정에서 길러진다. 일시적으로 단편적인 학력을 쉽게 높이는 방안으로 또는 수준별 이동식 수업 등 획일적인 방법으로 길러지는 성질의 창조성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창조성은 다양한 이질성 집단에서 다양한 교우와 상호작용에 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런 지침을 내렸다는데 대하여 심한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이 정부 출범직전 정권 인수위에서는 영어 몰입식 교육을 주장해 한동안 교육계를 흔들더니 새 정부 출범 한 달이 겨우 지난 이 시점에서 또 이런 지침을 아무런 준비나 합의도 없이 불쑥 내어놓는 것을 보면 성과에 너무 성급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교육은 손쉬운 저질 다량학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저 학생서열을 집는데 유효하거나 이를 위한 시험 도구에 불과한 그리고 이 시점이 지나면 금방 망실되고 마는 일시적 학력에 비용을 들여서는 안된다.
교육의 목적은 인간 개개인이 요구하고 성취하는 인간상에 있는 것이지 인간을 필요 도구로 만드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공장에서 같은 물건을 만들어 내듯이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경제논리만 가지고 교육을 다스려서는 더욱 안된다. 그렇지 않아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교육마저 그렇게 됨으로써 장차 일어날지도 모른 사회문제 해결에 들어갈 비용도 미리 예견해야 한다. 이미 불쑥 내놓은 지침을 취소하는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앞으로 올 더 큰 문제를 미리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재고하기 바란다.
/이강녕(전 전라북도 교육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