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 속에서 서예는 한 몸"이라고 말해온 서예가 여산(如山) 권갑석 선생.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됐는데도 지난해 두 딸과 함께 가족 서화전을 펼쳐냈던 그가 25일 별세했다.
1924년 익산 출생으로, 전주 사범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오랫동안 교육자로 활동하며 이리시·군산시 교육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행정에 있어 많은 업적을 쌓았다. 본격적인 서예활동은 1960년대 중반부터. 72년 국전 문공부장관상 수상을 비롯해 78년 국전 초대작가가 된 그는 지난 반세기 동안 손에서 붓을 놓지 않으며 전북 서단은 물론, 호남 서맥을 굳건히 지켜왔다.
그는 서예 대중화를 실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서예가다. 73년 한국서예연구회를 조직, 해마다 '신춘휘호대전'을 열고 신인들을 발굴해 왔으며 봄이면 시민들에게 무료로 입춘축을 써서 나눠주곤 했다.
'한·중·일 국제서예전'을 기획해 대규모로 서예전시를 열기도 했으며, 창암 이삼만 선생 기념사업회를 이끌면서 창암 서예 연구와 유묵첩 발간, 서예비 제막 등 조명사업을 펼쳐왔다.
왕성한 활동으로 서단을 아울러온 선생은 그러나 전시에 있어서 만큼은 엄격했다. 90년 군산 전시 이후 10년 만에 모처럼 마련한 2000년 전주 전시에서는 옛 사람들의 정신과 미학을 바탕으로 새롭게 써낸 창작서체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시가 작가에게 자기공부가 된다"면서도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앞서 함부로 작품을 내놓지 못한다"고 했던 선생의 소원은 가족 서화전. 2007년 서예가인 두 딸 유산(裕山) 영수씨와 한국화가 안산(安山) 영주씨가 함께한 '삼산(三山) 가족서화전'에서 선생은 "말년에 영광이야. 이 정도면 복받은 가족"이라며 기뻐했다. 가족 서화전은 그의 마지막 전시나 다름 없었다.
유족으로는 영래(전 외환은행 본부장) 영규(안양과학대학 건축과 교수) 영수(서예가) 영희(제주오페라단 단장) 영은(주부) 영주씨(원광대 교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