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삼성구룹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났다. 1987년 12월, 회장직에 취임한후 만20년이 넘은것이다. 그 20년동안, 이병철이라는 아버지가 쌓은 부(富)의 성(城)을 세계적 브랜드 기업, 오늘의 삼성으로 수성(守城)을 한 것이다.
그동안 일부에서는 서구적 시각에서 가족경영이라고 비판했지만 유교적 전통이 살아있는 우리 사회에서 기업경영도 유교적 스타일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자연스런 대물림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라를 세우는것이나 부(富)의 제국을 만드는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잘 지키는 수성(守城)이 더 어려울수도 있다. 그래서 창성(創城)보다 수성(守城)이 더 높은 점수를 받기도한다. 왕건(王建)이 고려를 창건했지만 고려의 수성을 제대로 한사람은 고려 제4대 광종(光宗)이었다. 제2대 혜종이나 제3대 정종은 재위기간이 모두 합하여 4년 남짓이었으나 광종의 재위기간은 26년이었다.
이렇게 짧지않은 기간에 권신(權臣)이나 부호(富豪)세력을 눌렀고 왕권의 최대 걸림돌인 외척(外戚)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근친결혼을 장려하기까지 했다. 중국으로부터 처음으로 과거(科擧)제도를 도입하여 인재 등용의 기회로 삼었다. 동북, 서북면의 개척에 주력하여 많은 치적을 남겼다.
조선을 개국한 사람은 이성계였지만 조선왕조의 수성(守城)의 기틀을 만든 사람은 태종 이방원이었다. 그는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 개국의 공로자 이었지만 후에 세종대왕이 왕노릇을 잘할수 있는 배경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하여 민원(民怨)을 이해할려고 했고 이종무를 시켜 대마도를 정복하게도 했다.(史劇)에서는 친 처남들 모두를 배척한 잔인한 인물로 묘사되곤 하지만 역사를 통해서 왕권의 최대 적(賊)은 외척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징기스칸의 몽고 대제국을 수성한 사람은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었다. 고려의 대항몽(對抗蒙) 30년을 막내리게 한인물도 바로 쿠빌라이 칸이었다. 이처럼 역사발전은 단절이 아니라 계승이나 수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수성을 잘해낸 이건희 회장의 퇴진은 그래서 잔잔한 아쉬움마저 남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