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입맞춤' 리뷰

잘 만든 마음의 사회·심리극

이영호(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장) (desk@jjan.kr)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입맞춤> 은 한마디로 '뛰어난' 영화였다.

 

<입맞춤> 은 살인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살인사건 현상을 중심으로 다룬 <추격자> 와는 달리 살인사건의 배후에 깊이 숨겨진 인간의 소외와 고독의 고통을 씨줄로, 일본 사회가 지닌 심리·사회적 단면을 날줄로하여 엮어나간 '마음의 사회·심리극'이라 할 수 있다.

 

소통을 주제로 주장해 온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매우 걸 맞는 작품이었다.

 

오래 전부터 일본의 감독 만다 쿠시토시는 고독하고 외로운 고통스러운 여성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소외된 여성들이 어떻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마음고생을 했던 것 같다.

 

쿠니토시 감독의 또다른 2001년 작품, <언러브드> 역시 그런 영화이었다. 자기 안에 갇혀 살 수밖에 없는 여성, 그 여성과 부딪치는 남성들이 어떻게 소통해 나가는가는 감독의 뛰어난 시나리오-그의 시나리오는 영화에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아내와 공동 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그녀의 디테일한 감성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사회적으로 아주 다른 두 종류의 남성 사이에서 자기를 찾아 나가며 자기를 구원해 가는 과정은 감독의 전 작품과 동일 선상에 있다. 아니, 광맥을 찾아가는 광부처럼 요동하는 마음의 저변을 추적해 나가는 기예는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입맞춤> 의 시높시스는 저녁 해거름에 주택가를 서성거리던 범인이 현관문이 열려있는 한 주택에 들어가서 남편과 딸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과 딸, 그리고 남편까지 잔인하게 살해한다. 며칠 후 범인은 현금자동 인출기에서 현금을 인출한 뒤 경찰에 자기의 범죄를 알린다. 범인은 언론사에도 알리고 자신의 체포 장면을 공개한다. 체포현장을 텔레비전 방송으로 보고 있던 여주인공 쿄코는 회사 사원, 동료로부터 언제나 이용당하면서 동료들에게서 무시당해온 심정을 의식의 밑바닥에 숨겨두던 28살의 독신 여성. 체포돼가는 범인의 웃는 모습에서 쿄코는 마치 휴화산이 갑자기 불을 토해내듯 자신 속에 있는 삶의 생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삶과 범인의 삶의 자리가 동일 선상에 있음을 확신하면서 범인과 소통의 길을 뚫어가는 작업을 하게 된다.

 

차입과 법정 방청과 면회를 거치면서 체포 이후 범인의 침묵을 깨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평생 가족으로부터도 사회로부터도 냉대를 당해 차갑게 굳어진 밑바닥 마음으로 소통을 막아 버렸던 범인이 목소리를 터뜨린 것. 한마디, 그 한마디는 사카구치가 쿄코에게 나아가 마음을 여는 첫 번째 소통이다. 또한 쿄코 역시 처음으로 소통을 시작하는 기적이다. 이러한 소통은 결국 사형당할 것을 알고 있는 두 사람, 쿄코와 사카구치 두사람을 결혼으로 맺게 한다. 은근히 쿄코에게 마음을 두게된 변호사 하세가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카구치와 쿄코 두 사람의 활짝 열린 마음의 소통은 각자의 삶의 가치를 승화시킨다. 사형수와의 결혼은 언론에 알려지고 칸막이 없는 면회실에 사카구치의 생일을 축하하러 들어간 쿄코. 이들의 열정의 소통은 쿄코가 사카구치에게 다가가는 것이요, 그의 육체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 길의 끝은 바로 <입맞춤> 이다.

 

그런데, 왜 쿄코는 변호사와 <입맞춤> 을 했는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감독의 물음은 소통이 깨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묻는 물음이다.

 

감독의 고백처럼 항상 이용만 당하고 무시당해온 외톨이들, 고통당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떳떳하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파하는 감독의 열정이, <입맞춤> 을 세상에 내놓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