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이 있던 날, 한 방송사 토론에 패널로 참여했다. 한미정상회담의 공과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리에서 필자는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를 적극 옹호하는 한 교수님의 발언 때문이었다.
북핵문제가 호전되고 있는데 우리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이라 안타깝다는 필자의 말에 대해 걱정할 게 없다면서 '사실 남북관계가 지금 안 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순순히 미국말을 듣는 것이다'는 기상천외한 평가를 내놓은 것이었다. 즉 당국간 대화가 중단되어 북이 남쪽으로부터 얻을 것을 얻지 못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미국에게 순순히 굴게 되었다는 '흥미로운' 분석이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사실 북미 핵협상에서 북한이 미국말을 잘 듣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한국은 대북압박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북이 남쪽에게 도저히 얻을 게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미국에 순응하게 될 것이다. 참 편한 분석이긴 하다.
그러면서 그 교수님은 더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북핵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선 남북관계라는 역할이 따로 할 게 없고 오히려 남북관계는 대북압박을 흐트러트리는 잘못된 신호를 북에게 준다는 주장이었다. 그 사례로 지난 해 2.13 합의 이후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가 진전되고 있는 상황에 남북정상회담의 개최가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말을 잘 안 듣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에 따르면 6자회담이 북핵해결의 방향으로 호전되면 될수록 남북관계는 더더욱 북을 압박해서 강경으로 일관해야 한다. 그래야만 북이 딴생각을 않고 6자회담에서 미국의 요구를 충실히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심야토론에서 필자는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우선론의 실상을 극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남북관계의 독자성과 고유한 역할은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은 채 미국과 공조해 미국이 하는 데로만 열심히 도와주면 결국 북이 핵을 포기하게 된다는 주관적 낙관론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현실은 어떤가? 오히려 한국 정부의 설득에 귀 기울이지 않던 부시 행정부의 대북압박에 대항해 북한은 2006년 결국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하고 말았고 한국 정부의 방침대로 부시행정부가 북미양자협상에 의한 해결방향으로 선회하면서 이후 핵문제의 진전이 가능할 수 있었다.
결국 한미동맹 우선론을 내세워 남북관계 역할론을 무시하는 사고방식에는 어떤 경우에도 남북관계는 경색되어야 하는 것이 된다. 6자회담이 잘되게 하기 위해 남북관계는 중단되어야 하고, 북이 미국 말을 잘 듣기 위해서도 남북관계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대부분 6자회담이 잘 안되고 북이 미국에 대결적으로 나올 경우에도 남북관계는 진전이 아니라 북핵과 연계된 중단을 또 주장한다는 점이다. 정말 이분들에게 남북관계는 항상 멈춰있어야 하는 것이다. 참 이해하기 힘들다.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