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온통 광우병 문제로 난리법석이다. 모든 농산물이 자유롭게 수입되게 된 마당에 안전하지 못한 농산물까지 수입된다면 말 그대로 국민주권의 포기라 아니할 수 없다. 적절한 규제와 자제라는 도덕적 윤리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먹을거리 문제 영역이다. 현재와 같이 농산물의 생산지와 소비지가 완전히 구분되고 대량으로 유통되는 현실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유기농업이 본격 도입되고 생협이 설립되기 시작한 80년대 말 시점에서도 이것은 논쟁거리였다. '생산자 농민은 소비자의 안전한 식탁을, 소비자는 그 대가로 생산자의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생협의 설립정신은 누가 보더라도 도덕적으로 타당하다. 하지만 생산지는 전국에 흩어져 있고 소비지는 대도시, 그것도 수도권에만 집중되어 있는 현실은 좋은 출발점에 비해 근본문제에 봉착될 수밖에 없다. 유통거리가 지나치게 멀고 생산자 농민과 도시 소비자가 '얼굴을 맞대는 관계'를 형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마트와 같은 대형매장이 유기농업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생협은 규모화로 대응하기 시작하면서 먹을거리의 유통거리(푸드 마일리지)는 더욱 멀어지고 복잡해졌다. 과연 유기농산물로 안전성을 인증을 받았다 하여 매연 뿜으며 장거리를 이동해도 도덕적으로 정당하단 말인가? 더구나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어도 유기농산물이라면 안전하다고 마구 먹을 것인가?
이미 농업 생산이 기계화되어 석유 없이는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국제 유가가 200달러를 돌파하는 연도 예측이 계속 짧아지더니 급기야 최악의 경우 올 연말이 될 수도 있다는 보고까지 나왔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값이 장기적으로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나라에서 석유 생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기계화 농업, 장거리 대량유통 체계는 결코 지속가능할 수 없다. 경쟁력이 있을 수 없다. 물론 이런 위기 상황은 일부 투기적 농업법인, 유통법인, 벤처농업인에게는 또 다른 기회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조직이 오래도록 존속했다는 사례는 과문한 탓인지 우리나라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결국 우리는 기존의 근대화농업 방식을 전면 재수정해야 한다. 소농, 가족농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는 방향에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을 기반으로 규모화를 시도하는 협동조합 생산방식을 전면 도입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역 생산 농산물을 지역내에서 가공하고 소비할 수 있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유통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적어도 생산자 농민이 자기 먹을거리조차 현금 주고 사먹는 불합리는 없애야 한다.
서구에서도 로컬푸드 시스템이라 하여 이런 방식으로 재빨리 전환하고 있다. 직매점, 학교급식, 지역화폐 등도 같은 맥락에서 사회운동의 일환으로서 적극 시도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자기 먹는 것에 민감하면서도 전체 농산물 유통체계에 둔감한 나라가 없는 것 같다.
이웃 일본에서는 식량자급율을 지역 단위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90년대 중후반부터 농협, 광역 지자체 중심으로 널리 이루어졌다. 더불어 지역농산물의 지역내 가공과 소비를 촉진하려는 지산지소 운동이 어느 지자체에서나 뿌리깊게 추진되고 있다. 동북지방의 이와테현이란 곳은 인구 135만에 35개 지자체로 구성된 곳인데 농민들이 운영하는 직매점만도 200개가 훨씬 넘는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용어를 우리나라에서 배워간 일본이지만 그것을 지역 단위로 실천하고 조직하고 있는 것은 일본인 셈이다.
우리 전북에서도 지산지소 관점에서 농민 직거래 시장을 개설하는 사례가 진안군에서 시도되고 있다. 매주 금요일 군청 앞마당에서 금요장터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앞으로 잘 정착되고 확산되도록 응원해야 할 것이다. 이번 광우병 파동을 보면서 식량을 지나치게 외부에 의존하고 장거리 이동하는 유통체계에 근본적인 문제점을 느낀다. 이런 시스템에서 한시 빨리 탈피하여 위기에도 강한 농업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행정과 주민, 전문가가 지혜를 모으고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때다.
/구자인(진안군청 마을만들기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