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가 한창이다. 한 세대 전만해도 '농번기'가 되면 농민은 물론이요 학생?공무원?군인들이 동원되고 정치인들도 앞장서서 무논에 들어서서 모를 꼽는 것을 자랑삼기도 했는데, 이제 우리 국민들 다수는 모내기철도 잊은 채 이 초여름을 보내고 있다. 쇠고기 파동과 유가 급등으로 불안 정국이 지속되는 상황에 모내기 운운은 너무 안이한 타령일지 모르겠으나, 어려울수록 근본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초한다.
현대인들은 조상들에 비해 매우 문화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과연 그러한지 자성해 볼 일이다. '문화적인 삶'이라 하면 정신?예술 활동을 우선 떠올리기 쉬우나, 일상 자체도 매우 중요한 문화이므로 가장 기본적인 일상인 의?식?주 생활을 과거 한두 세대 전의 그것과 대비해 보면 오늘의 문화를 가늠할 수 있을 터.
과거 우리 조상들은 대부분 스스로 농사를 지어 그 산물로 밥을 짓고 옷을 지었으며, 자신의 살 집을 스스로 짓는 경우도 흔한 일이었다. 즉 의식주의 대부분을 '스스로 짓기'를 통해 해결했던 것이다. 평범한 아낙들은 밥 짓기와 옷 짓기에 한 생을 보냈으며 보통의 남정네는 농사짓기로 생업을 삼았고, 일부 선비 계층은 농사 대신에 글짓기에 소홀하지 않았다. 그래서 심지어는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식 교육도 농사짓듯이 하였으니, 조상들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짓기를 통하여 '짓기의 주체'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해왔다고 하겠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일상은 어떤가? 옷 짓기와 집짓기가 이미 타인이나 전문업체에 맡겨진 지 오래고 밥짓기도 갈수록 줄어가고 있어서, 머지않아 의식주 모두가 '스스로 짓기'로부터 결별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즉 현대인들은 갈수록 '짓기의 주체'에서 멀어져가고 있으며, 그 대신에 전문업체로부터 기성화된 상품을 돈으로써 사들이는 '짓기의 객체'로 전락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의식주 생활을 과거의 형태로 되돌리자는 주장은 아니다. 또 이미 그럴 수도 없는 시대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밥 짓고 옷 짓고 농사 짓듯 정성들이는 그런 정신은 이어야 한다고 본다.
'짓기'의 개념은'제작'에 가깝지만, 거기에는 '설정된 목표에 따라 원재료를 배열하고 일정한 시간 동안 정성이라는 정신 가치를 투입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과정과 결과물로서의 제작'이라는 속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 결과물의 사용자를 전제함으로써 짓는 사람의 정성이 깃든다는 점에서는 인본주의적 속성을 지니고 있으되, 또 시간적 경과를 통하여 유용한 물적 가치를 생산·창조한다는 점에서 산업적·문화적 속성도 강하게 함축하고 있다. 요컨대, '스스로 짓기'를 일상화한 전통적인 삶의 문화성과 인본성을 되새겨보면, 이런 저런 짓기의 토대가 되는 농사짓기가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놀기'나 '즐기기'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짓기'를 강조하는 것은 마이동풍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현대문화가 '짓기'에 소홀함으로써 여흥과 쾌락으로 몰입해가고 있다는 점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농사짓기를 귀치 않게 여긴 결과로 밥짓기·옷짓기·집짓기로부터 멀어지고, 또 그러다보니 우리 문화가 짓기문화 중심에서 놀이문화 중심으로 바뀐 것을 자성해야 한다.
아직 모내기가 한창이다. 무논에 들어서서 모를 꼽는 일도 옛일이 되어가고 있지만, 들녘을 푸르게 장식해가는 모포기를 보면서 다시금 '짓기 문화'의 부활을 꿈꾸는 일은 자꾸만자꾸만 반복해도 괜찮을 일이다.
/임명진(전북민예총 회장·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