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함수 - 김근식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핵문제가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 핵신고와 차기 6자회담 개최문제를 놓고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이 북경에서 막바지 의견조율을 벌였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마지막 힘겨루기도 감지된다. 3단계 핵폐기 협상 대상에 핵무기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북한의 입장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찌됐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2단계 작업이 최종국면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6자회담이 재개되면 지금까지의 북미협상을 토대로 향후 검증방식을 논의하고 최종단계인 핵폐기 협상을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북핵문제가 북미 양자간의 협상과 이를 공식화하는 6자회담의 진전만으로 진행될 경우 이 과정에서 한국의 입지는 매우 축소될 수밖에 없다.

 

지금껏 한국 정부는 6자회담의 구조 말고도 남북관계라는 독자적 지렛대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대북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북핵문제에서 일정한 개입력을 가질 수 있었다. 6자회담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과 미국을 설득해서 합의가능한 접점을 찾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남북관계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5년 6자회담이 장기공전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대북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김정일 위원장의 이른바 6.17 면담을 성사시킴으로써 북한의 회담복귀를 이끌어냈다. 9.19 공동성명을 합의하고 기쁨의 악수를 나누는 그 날 한국 대표가 양 손에 미국 대표와 북한 대표의 손을 잡고 환히 웃는 모습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6자회담에서 우리의 입지를 마련하고 대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용한 통로였던 셈이다. 6자회담이 대결국면을 지속할 때에는 그로 인한 한반도 긴장고조를 그나마 완화시키고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남북관계였고, 6자회담이 협상국면에 진입할 때에는 북한과 미국의 타협을 더욱 가능하게 하고 북한의 건설적 행동을 유도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남북관계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경색국면을 지속하고 있는 지금, 북핵 국면에서 한국의 역할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중단된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만 북핵문제와 6자회담에서 우리의 건설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북미협상은 진전되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엇박자를 낼 경우 6자회담에서 주연은 북한과 미국이 될 것이다. 우리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달려 있는 핵문제에서 우리의 역할과 발언권이 없음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북핵문제 우선해결을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는 시급히 복원되어야 한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할 역할은 없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눈치 볼 필요가 없다.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