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촛불문화제는 새로운 문화혁명 - 김동영

김동영(전북발전연구원 연구원·문화포럼 異共 대표)

 

축제는 집단적 몰입으로 일상의 규범과 질서를 전복시키는 놀이를 통해 이상적 세계를 '바로 그 자리'에서 구현한다. 축제 참가자들은 축제의 장(場)에서 사회적 지위나 빈부의 격차가 사라지고, 나이(세대)나 성의 차이를 뛰어넘고, 과감한 의상이나 가면으로 기존의 규범적 질서를 파괴하는 집단적 실천을 행함으로써 유토피아를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축제의 현실은 이러한 본질적 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축제는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기존의 틀 밖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지 못했다. 축제는 항상 질서 있고, 깨끗해야 하며 일탈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것은 몰입을 방해하고 심지어 기존의 질서를 더욱 강조하거나 겨우 기존의 틀 안에서의 사유만을 허락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촛불문화제는 단번에 기존의 축제 개념을 뛰어넘어버렸다. 지금까지 기존질서의 전복은 항상 정치의 역할이었지 축제의 역할은 아니었다. 프랑스 시민혁명이나 국내의 518민중항쟁을 축제적 요소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엄밀하게 그것은 축제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였다. 진지함이 속성인 정치적 행위와 유희가 속성인 축제의 결합은 불가능하게만 보였다.

 

그렇지만 촛불문화제는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시위를 진압하는 전경의 구호를 흉내내고, 불법주차(?)되어 있는 전경버스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시위대의 진입을 막는 컨테이너박스를 그들의 무대로 만들어버렸다. 권력을 비틀고, 권력을 전도시키고, 권력의 상징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그들은 '시위'가 아닌 일상을 전복하는 '놀이'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도로의 주인은 차에서 사람으로 바뀌고, 권력의 주체는 대통령이나 경찰에서 국민으로 바뀌고, 심지어 동시다발적 공연이나 소규모토론 등은 중심과 주변을 주체와 객체를 해체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각자의 독특한 의상이나 개성있는 피켓을 들고 서슴없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시위대 속의 '우리'라는 객체로 매몰되지 않고(melting pot) '나'라는 주체로서 전체와 조화(salad bowl)를 이룬다.

 

게다가 실시간 인터넷 생중계는 서울과 부산, 전주를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고 그들은 이미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는 같은 공간 안에서 서로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과거 오프라인 광장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386세대와는 다르게, 보이지 않는 온라인상의 상상의 광장을 통해 물리적 공간의 확장뿐만 아니라 '의식의 확장'까지 그 힘을 확대하고자하는 '촛불세대'로 거듭나고 있다.

 

이 촛불의 물결을 기성권력은 현 정권을 전복하려는 정치행위로 간주하려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상황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편협하게 해석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촛불세대는 기성정치에 대항하여 선거가 끝나고 난 후에도 진정한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로써 촛불세대는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 일상에서도 지속적으로 의제의 결정권한을 행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은 기존 한국사회의 모든 가치를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문화혁명이다.

 

기존 질서와 규범을 전복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유토피아를 경험하려는 축제야말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원천이다. 촛불세대는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고 틀 밖에서 사고할 수 있는 축제의 장(場)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에게 상상의 자유를 허(許)하라.

 

/김동영(전북발전연구원 연구원·문화포럼 異共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