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않다는 건 바꿔 말하면 얽매이는 것이다. 그대로 옮기는 것은 스스로 작업이 주는 즐거움을 덜어내는 일. 인간보다 동물이나 식물이 화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거나 에스키스(esquisse)를 한다던가, 그런 준비를 하지 않아요. 계획적인 틀에 얽매이게 하는 의식 자체가 무의식에 비해 유희의 즐거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죠."
8월 5일까지 전주 갤러리 공유에서 열리고 있는 이희춘 초대전 '꿈-중도(中道) 읽기'. 지난 2월 캔버스에 유화가 익숙한 뉴욕 전시에서 색다른 관심을 받은 작품들. 그는 "즉흥적으로 그리다 보니 그림을 그려 단 한 점도 버렸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물을 많이 쓰고 수없이 붓질을 하며 발묵을 강조한 표현기법과 민화적 느낌이 나는 오방색의 사용.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본 화면 속에는 골프를 치거나 발레를 하고, 색소폰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부조화가 만들어낸 조화. 그의 그림은 아름다움도 추함도 아닌, 중간적 입장이다. 그는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 곧 중도"라고 덧붙였다.
"한 길을 걸어온 것도 벌써 20여년이 됐습니다. 이젠 나름대로의 일정한 패턴을 지닌 정형 속을 유형할 법도 한데, 아직도 그 시야가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고정된 형상 보다는 무위자연이라는 특정한 사유에 대한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정형 속에서 즐기려고 합니다."
60년대 실험적인 한국 화가들이 으레 그랬듯이, 그는 "우연성에 의한 행위적 필치에서 오는 그들의 용필을 수용하고 동감하며 나름대로의 동양미학의 지평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