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학문을 받아들인다는 명분까지는 좋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은연중에 우리 것을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또 영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의 사고 방식이나 의식 구조까지 온통 영어식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나 모진 추위와 강풍 속에서도 철이 바뀌면 따뜻한 봄바람이 불 듯, 오늘의 우리말 현실은 꼭 그렇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약하기는 하지만 우리말에도 봄바람이 부는 기미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기름기 투성이의 중국 요리나 서양의 스테이크를 포식한 뒤에 으레 개운한 뒷맛을 위하여 우리네 전통의 김치를 찾는 것과 비교된다고나 할까.
저속하다 하여 내팽개쳤던 토박이 말이 지금은 오히려 참신한 반가움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오너드라이버'란 말이 '자가운전'을 거쳐 '손수운전' 혹은 '몸소운전'으로 정답게 다가섰고, '페이지'란 말이 '면(面)'을 거쳐 지금은 '쪽'이나 '갈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 간다면 '밀크' 혹은 '우유'가 '쇠젖'이란 토박이말로 자리바꿈한다고 해도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어는 인간의 행동과 사고(思考)를 주조(鑄造)한다고 갈파한 어느 언어학자의 말이 실감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