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한시 교습본이 없다고 합디다. 서울에 굵직굵직한 서점에 물어봐도 그런 게 없대요. 책이 없으니, 한시를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칠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한시학자 이형진씨(83). 이씨는 고매한 한시(漢詩)의 깊은 맛을 읊고, 음미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선비다. 하얗게 센 머리 만큼이나 그는 거의 평생 한시와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
그의 한시 사랑은 아버지 대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한 한문학 연구가 이뤄진 곳 전남 구례. 한시가 뛰어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한시학자 황매천 선생이 여기에 살았다. 때문에 그의 수제자였던 송섭화 선생, 이씨의 부친인 이긍재 선생도 이곳서 가르침을 이어갔다.
덕분에 이씨는 어렸을 때부터 수준높은 한시를 귀동냥으로 들을 수 있었고, 16세때 정식으로 입문하게 됐다.
"95년 전 '운남사 시회'라는 게 창단됐어요. 한시를 배우기 위한 스승과 제자들의 모임이죠. 1년에 두번 모임을 가졌는데, 인근에서만 500명이 모였어요. 16세때 여기 정식회원이 됐습니다."
이후 '여수반란사건'으로 모든 한시가 태워졌고, 결혼 후 생계 부양에 허덕여 한시를 접어야 했다. 그리고 나이 예순이 됐을 때야 비로소 자식들의 권유로 다시 한시를 쓰게 됐다.
하지만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한시를 가르쳐 줄 사람도, 책도 없었기 때문. 섭화선생과 긍재 선생의 제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기초적인 문장을 한시로 표현하는 법을 담은 책도 없었다.
"'길을 가는데'를 한시로 쓰려면, 어떤 한자를 써야 할까요. 초보자에게 그런 한시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손수 모든 한자를 찾아서 일일이 기록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바람은 소박하다. 15년간 공(功)들여온 한한사전(韓漢事典)을 완성하고, 더 많은 학생들이 한시를 배우도록 하는 것. 잊혀져 가는 한시문화가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주변에서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살아생전에 한한사전을 완성하는 게 내 임무"라며 "한시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대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돕는 것이 유일한 소망 "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