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항녕 "'광해군의 부활' 은 왜곡된 관점"

빈민구제·실리외교 잘못 알려진 사실…기존 역사학자 상반된 주장 논란일 듯

28일 열린 'TV의 광해군, 역사의 광해군' 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시민들이 오항녕 연구원의 주장을 경청하고 있다. (desk@jjan.kr)

'광해군의 부활은 어떤 혹세무민(惑世誣民)이다'

 

28일 전주시 교동 동학혁명기념관에서 열린 'TV의 광해군, 역사의 광해군'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오항녕 충남대 우암연구소 연구원은 "광해군의 부활은 왜곡된 관점"이라며, 이런 논리적 오류가 재생산되는 사회적 담론 과정을 짚었다.

 

그는 먼저 일제시대 역사학자 이나바 이와키치가 광해군을 '명분론자'들과 구분하여 백성을 윤택하게 하는 '택민주의자(澤民主義者)'라고 잘못 평가한 부분을 역사학자 홍희, 이병도가 그대로 받아들여 왜곡된 평가가 방치, 확대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역사학자들이 광해군을 국왕이라는 시스템이 아닌'후궁의 아들' '고독한 군주' 등 개인적인 면모를 부각,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광해군이 방납의 폐단을 개혁하고자 대동법 시행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는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광해군 정권의 좌의정 기자헌이 방납 커넥션의 핵심인물이었고, 광해군도 대동법을 반대하면서 확대 시행을 미뤘다는 것.

 

또한 광해군대에는 창덕궁 등 6개 궁궐 신축이 계속되었다. 심지어 궁궐 신축을 빈민 구제로 이해하는 일부 역사학자도 있으나, 궁궐 신축이 오히려 전국민의 빈민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대명관계에 있어서도 명분보다는 실리를 선택했다고 평가 받았으나, 대동법 실패, 궁궐 건설, 정치세력의 고립 등 내치(內治)의 혼란 때문에 대외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좁았던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오 연구원은 광해군의 왜곡된 부활이 재생산되는 것은 식민사관의 '사대 vs 주체' 컴플렉스를 방치한 데서 생긴 오류라며 '실용주의'를 자처하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도 '기회주의' 외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리 없는 명분은 공허하고, 명분 없는 실리는 맹목이라는 것.

 

오 연구원의 강연은 광해군을 '중립외교' '실리외교'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기존의 주장을 뒤엎는 새로운 주장으로 주목 받았다.

 

오 연구원은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와 국사편찬위원회 국내사료 연수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충남대 우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