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싸움에 밀리지 않으려면, 상대가 뭐라던 내 말을 반복한다"
"싸움은 못하는데 이기는 놈들이 있어. 투지가 있기 때문이지"
"주먹이 좋다고 싸움을 잘 하는 게 아니지. 싸울 때 가장 중요한 건 거리야"
2년 전 개봉했던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싸움의 고수가 하루 스물 한대를 맞고도 운 좋은 날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정도인 고교생 제자에게 전해준 싸움 잘하는 비법이다.
요즘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은 듯 전북도와 전주시간 싸움이 가관이 아니다. 흔히 싸움구경이 재미지다는데, 그러나 두 기관의 싸움은 재미가 없다. 대부분의 도민들은 무엇 때문에 싸우고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모른다.
물론, 싸움이라는 게 꼭 논리적일 수만은 없다. 감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싸움이 된다. 전북도와 전주시가 인격체도 아닌데 '싸움을 한다'고 하는 것도 기관간 감정을 앞세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두 기관의 싸움의 실체(fact)는 간단하다. 전주시에서 추진하는 사업(상수도 유수율 제고사업)에 문제가 생겼고, 그 문제에 대해 상위 자치단체인 전북도가 감사를 벌여 관련 공무원을 징계한 것이 발단이 됐다. 전주시는 재판에 계류중인 사안에 대해 도의 과도한 감사와 징계에 발끈했고, 도는 문제된 사안에 대한 감사와 징계는 상위 자치단체로서 당연한 권리와 의무라고 응수했다. 시와 도가 각각 주장할 수 있는 이야기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갈수록 갈등을 재생산하는 데 있다. 전주시는 권한쟁의 헌법소원을 제기한 데 이어 전북도가 '업체 편들기 정보공개를 했다'며 행안부 감사청구와 검찰 수사를 요구한 상태다.
이들 두 기관의 싸움을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아우(전주시)가 업체와 시비를 가리고 있는 중에 형(전북도)이 아우를 나무라는 데 어떻게 형으로 모시느냐는 게 시측 옹호론이다. 첫 단추를 잘못 낀 쪽이 도라는 이야기다. 반면, 잘못한 아우를 그냥 둘 형이 어디 있으며, 형을 향해 실탄이 장착된 총까지 쏘는 아우가 어디 있느냐게 반론이다. 속시원히 '당신 잘못이오' 한편을 몰아붙이기 어려운 복잡한 사정은 여기서 접자. 다만 최소한 양비론은 펼 수 있다. 싸움은 일방이 하는 게 아니니까.
전주시는 온통 이 싸움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고, 전북도에서는 전주시 관련 사업 심의가 올 스톱됐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권한 쟁의에 관한 헌법소원 판결에 따라서는 광역자치단체와 기초단체의 위상이 재정립되고, 전주시와 전북도가 그 역사를 쓰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내년 예산확보 문제로 각 자치단체마다 중앙 부처를 찾아다니느라 부산하다. 특히 정권이 바뀐 뒤 전북의 자치단체들로선 예산확보 활동이 더 어려워졌다고 야단이다. 지난해 약속했던 예산이라고 하면 정부 관료들로부터 '정권이 바뀌었어요'라는 핀잔을 받을 정도란다. 형과 동생이 힘을 합쳐도 될까말까 할 판에 이렇게 소모적 싸움에 매달려야 하는지 한심하다.
"집에 돈은 있냐? 싸우려면 돈 많이 든다" 고 '싸움의 기술자'는 말한다. 소송비용 모두 도민의 세금일 것이며, 행정력 낭비에 따른 피해는 누구에게 올 것인가. 두 기관이 전주와 군산에서 로케이션 한 '싸움의 기술' 중 너무 기술적인 면만 배운 게 아닌가 싶다.
싸움의 진정한 승자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자라고 생각한다. 도민과 시민을 위해서라면 상대에게 무릎도 꿇을 줄 알아야 한다. 무조건 물러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법적인 문제가 꼭 필요하면 판결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라. 정치력이 필요하다면 단체장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풀어라.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링에서 빨리 내려오라는 이야기다. 꼭 싸움을 하고 싶다면 누가 도민을 위하고 시민을 위하는 정책개발과 활동을 하는지 겨뤄보라.
/김원용(정치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