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연길시 근교 조선족 자치구 마을 공연이 있던 날이다. 방문단은 잠시 짬을 내어 연길에서 40분 거리에 위치한 용정에 도착했다. 용정은 한민족이 중국으로 건너와 가장 먼저 터를 잡은 도시. 사방으로 뻗은 한국식 기와 모양을 한 집, 한글로 된 간판 등 곳곳에 조선 사람의 흔적이 묻어났다. 특히 이곳은 인근 비암산의 작은 정자 '일송정'과 '해란강'을 비롯해 윤동주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윤동주 생가를 방문하기 전 길잡이로 나선 조선족 과학관 장성주 부관장이 일행에게 대뜸 질문했다.
"윤동주는 조선족입니까? 한국인입니까?"
"윤동주 시인이 태어날 즈음엔 조선족이다 고려인이다 따로 구분이 없었으니, 그저 조선 사람이겠죠"
그 시대에 조선족, 고려인, 한국인, 북한인 이런 구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답했더니 장 부관장이 '정답'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뿌리가 같은 한민족 아니냐는 것이다.
장 부관장은 "연변에서 먹고 살만한 사람은 절대로 한국에 가지 않는다"는 뼈아픈 말을 던졌다. 연변에서도 자식들 교육시키며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기 때문.
그러면서도 한국인들이 조선족보다 행복지수는 더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순간 한국인들이 이들을 상대로 사기 등으로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공연단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연길시 의란진 춘흥촌 조선족 마을.
다른 조선족 마을에 비해 부촌에 속하는 동네다. 방문단이 도착했을 즈음 이미 마을 사람들은 회관으로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알록달록 꽃무늬 블라우스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나온 시골 아낙의 모습은 마치 장 서는 날 옷장 안에서 고운 옷을 꺼내 입고 나들이 나서는 우리네 시골 어머니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곧바로 공연이 펼쳐졌다. 이날 첫 공연은 임실 필봉농악단 사물놀이.
윤정희씨(중국 연길시·51)는 "조선의 악기와 사물놀이는 처음이지만, 왠지 낯설지 않고 흥이 나서 좋다"며 연신 웃어댔다.
조선족 무리 쪽에서 '잘한다~'는 추임새도 이어졌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조선 사람의 피를 가졌기 때문일까. 풍물을 통해 내면에 숨겨져 있었던 흥과 신명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단원들도 신이 났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기는 커녕 공연에 더욱 몰입했다.
공연을 지켜보던 박영순씨(중국 연길시·64)는 "딸 둘이 한국으로 시집을 갔다"며 "풍물을 취해 있으려니 시집간 딸들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어 클래식 기타연주 라이브 공연, 판소리 등 공연 끝으로 아쉬운 마무리를 했다. 신경혁 춘흥촌 촌장은 "이번 공연은 기대 이상으로 대단히 좋았다"며 "앞으로 조선 풍물 공연을 자주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공연 이후 뒤풀이까지 함께 하지 못했지만, 공연단과 조선족 마을 사람들 사이의 한 민족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공연을 통해 보여지는 성과물 보다 한 핏줄이라는 소통의 공감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지현(여성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