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문화의 발견] 시골 사람도 극장에서 울고웃고 싶다

복합상영관에 밀려 사라지는 극장 시군에 한 곳이라도 상영관 있었으면...

어디 극장이 영화만 보는 곳이겠는가. 단체관람의 기억부터 연인의 손을 잡고 키스를 나누던 은밀한 추억과 함께 울고 웃기도 하던 곳. 이제 그런 극장은 없다. 다만 외래어로 단장한 멀티플렉스들이 영화의 거리에 차고 넘칠 뿐. 전주의 남아도는 스크린은 적자를 불러올 것이 뻔한 가운데 시골 극장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중심도시로 손님을 빼앗긴다. 그 안타까운 모습을 돌아보았다.

 

전주시 고사동 아카데미아트홀에는 아직도 '미녀는 괴로워'간판이 1년 넘게 걸려있다. 불과 얼마 전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관이었는데, 영화의 거리에 전국적인 복합상영관 체인점이 들어서면서 문을 닫고 만 것. 한 때 전북 독협 등이 주축이 되어 예술영화전용관으로 변화를 시도했으나 그마저 관람객이 적어 시네마테끄로서의 기능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명화, 대한, 피카디리 극장 등이 조용히 사라져 갔지만 시민들은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인구 1만 명당, 1개의 스크린이라는 최적의 환경을 누리는 전주시민 입장에서는 그저 예전의 추억만 아쉬울 뿐, 오늘날의 시장논리에 쾌적한 서비스가 늘어났다고 수긍하고 마는 편이다.

 

군산과 익산도 복합상영관이 호황을 누리는 가운데, 인구 9만의 남원시에도 지난 6월 '시너스' 4개관이 오픈해 멀티플렉스 시대를 열었다. 그렇다면 인구 12만이 넘는 정읍은 어떨까? 작년까지만 해도 현대시네마와 함께 중앙시네마 두 곳이 선의의 경쟁을 벌였는데 한 곳이 문을 닫고 말았다. 적자는 견딜 수 있었지만 새롭게 적용된 '소방법'이란 암초를 만난 것. 100인 이상 수용가능한 영화관은 방염처리 보강이라는 다중이용업소에 대한 소방법을 맞추기위한 비용 부담을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

 

정읍 중앙시네마에서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 상영되고 있다. 관객 채범석씨(25·시기동)는 "사운드가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전국 동시개봉이라는 게 참 다행"이라고 말한다. 은 정씨(39· 연지동)는 "전주로 가면 기름값에 아이들 팝콘 사주고 자장면이라도 먹게 되면 오만 원도 더 든다"며 "아이를 부모 손잡고 들어가면 눈감아주는 것도 시골극장의 좋은 점"이라고 꼽았다.

 

그렇다면 다른 시군은 어떨까? 인구 10만이 깨진 김제시에는 극장이 없어진 지 10년이 다 돼간다. 익산이나 전주와 가까워 유동인구가 많은 탓이라지만 이래도 되는지 싶다. 나머지 군단위는 말할 것이 없다. 새롭게 개봉되는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은 전주로 나오던지 아니면 비디오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여점을 찾든지, 그것도 아니면 케이블 티비에서 재탕 삼탕을 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 외에는 수가 없다. 군 단위 지역에 단 한 개의 영화관도 없는 경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잠 오는 예술 영화 상영관이 아니라 최소한의 시민들의 볼 거리 쉴 거리를 거들어주던 극장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문화는 차치하고라도 영화 상영자체가 결국은 이윤추구를 위한 개인이나 기업의 경제적 활동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의 시군에 한 곳 정도의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은 있어야 사람 사는 곳 아닐까. 이것이 안 될 때는 국가기관 아니면 지방자치단체에서라도 낙후된 곳에 사는 주민들을 위한 상영기회가 있어야 할 터인데 …….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은 낙후된 전국 각 지역을 돌면서 국내외 영화를 상영하는 '찾아가는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영상자료원은 전북지역의 국립전주박물관과 전북도립 미술관 그리고 군산시 청소년 문화회관에서 애니메이션이나 지나간 명화들을 상영하고 있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과연 이곳이 낙후지역일까? 진짜 영화를 상영해야 할 곳은 극장이 없는 순창이나 임실 부안 같은 곳이 아닌가 싶다.

 

작년 순창군에서는 주민을 위한 문화향수의 기회를 위해 순창읍 주민자치센터 주관으로 향토관에서 빔 프로젝트를 이용해 매주 1회 영화를 상영 했다. 그런데 이마저 중단되었는데 그 이유가 출시된 지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영상물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해당관계자의 저작권법에 관한 고발을 당했기 때문이다. 순창군 구림면에 사는 황호숙(44)씨는 "시골사람도 홈쇼핑이나 인근 대형마트를 통해서 도시인과 비슷한 물건을 소비하는데, 문화만큼은 어떻게 접근할 방법이 없다"며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행히 좋은 소식도 들린다. 전주시민미디어센터(영시미)에서 최근 3000만원의 기금을 받아 소외된 계층에게 생활 속에서 영상문화를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한다는 소식이다. 이 작은 기회가 극장이 없는 시군지역으로 눈을 돌려 시골사람도 극장에서 울고 웃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꼭!

 

/신귀백(문화전문객원기자·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