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네이글러(Michael Nagler)의『폭력 없는 미래』(이창희 역, 두레, 2008; 원제: The Search for a Nonviolent Future)는 2002년 전미국도서상을 수상한 노작이다. 간디의 손자 아룬 간디는 추천 서문에서 "인류는 폭력의 문화에 푹 절어 있어 그것이 우리 존재의 핵심까지 파고들어버렸다"고 탄식한다. 폭력에는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과소비, 자연파괴, 증오, 편견 등과 같은 조용한 폭력도 엄존한다고 하였다.
저자는 '비폭력'이란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가려져 왔을 뿐 원래부터 있어 왔던 것이며, 그것은 약자의 무기가 아니고 강자의 무기라고 주장한다. 사랑에 바탕을 둔 비폭력의 강력한 힘은 공포로부터 나온 힘보다 천 배나 더 강하고 오래 지속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폭력이 없는 즉 비폭력 상태를 정상적인 상태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꼼꼼하게 서술하고 있다.
1991년 8월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주의로 돌아가려는 반혁명 쿠데타를 대중이 일어나서 봉쇄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용기 있는 비폭력 저항 운동가들이 몇 달 전부터 체계적으로 비폭력적인 대응 전략을 꾸준히 준비해온 결실이었다. 그들은 아무 무기도 없었고 오직 의지, 정의에 대한 확신, 그리고 목숨을 건 용기를 가졌을 뿐이었다.
1941년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수감자를 대신해 죽기를 자청한 끝에, 물도 주지 않는 아사 감방에서 죽어간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의 예는 비폭력의 힘이 나치 하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현장에 있었던 이는 당시를 이렇게 증언하였다.
"이 일은 수용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인간성이 진흙탕에 떨어져 짓밟혔다는 말이 틀렸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정의로운 세상은 계속 존재할 수 있으며,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은 이런 세상을 파괴할 수 없다는 확신을 얻었다. 콜베 신부가 우리들 중 한 사람, 아니면 그 사람의 가족을 위해 죽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단순한 시각이다. 그의 죽음은 수만 명을 구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저자는 이처럼 비폭력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발휘해 왔는가를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비폭력주의자들은 폭력보다 비폭력의 힘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여 폭력 대신 이 힘을 선택한다.
비폭력은 폭력이 아닌 어떤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뿌리박은 힘이며 비폭력은 법칙이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 당시 드러났듯이 전쟁을 게임을 보듯 텔레비전으로 감상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욕망을 무한대로 부추키는 광고, 객관적임을 표방하는 매체 보도 방식, 이런 것들이 폭력을 내면화시킨다. 해결책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 시대에 이르러 폭력이 넘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폭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도전에 직면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네이글러는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불러오기 때문에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제까지 세계평화를 위한 인류의 끝없는 전쟁, '마약과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 등은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우리는 역사와 자신을 돌아보고 비폭력의 소양을 쌓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것은 근본적인 가치관, 세계관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무자비한 무한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즈음 '내'가 아닌 '우리'의 공존을 위하여 시대는 우리에게 깊고도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최효준(전북도립미술관장·본보 서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