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과장은 "~하게요"라고 말하곤 한다. 스스로 결정한 가벼운 일에 대해 내 뜻을 물어볼 때 그런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그러게요 →"다(그러게요↗나 그러게요??가 아니다). 우리 지역의 특유한 말투다. 참 매력덩어리다. 결혼식 주례사 때 대화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신혼부부에게 꼭 쓰도록 권할 만하다.
이 말투는 우리 지역을 닮았다. 전주 IC를 지날 즈음 차창에 비치는 봉긋 솟은 야산과 같은 높이여서 험악하지 않고 가깝게 느껴지는 부드러운 선이 매력적인 말투다. 진안 골짜기 논다랑이를 스치는 초가을 바람처럼 정겹고 수줍은 듯 감기는 말 맺음이다. 임실 옥정호에 이는 물결처럼 잔잔하면서 여운을 남겨두는 향토어다.
이 말은 여유와 유연성이 남아있고, 생각을 한 번 더 가다듬게 기회를 준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매칭시켜 주는 창조적 숙성언어다. 극한 대립이 첨예하게 맞닿고 양보가 무능으로 비쳐지는 세상에 완충적인 여유를 남겨주는 표현이다. 여기서 지금 바로 당장(here and now) 뭐든지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조급사회에서 재고삼고의 연륜이 다져진 말이다. 자기입장만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상대방은 조건 없이 따르게 하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에게 치료약이 될 수도 있다. not determined가 아닌 underdetermined의 매력을 지녀 감성을 모으는 회의에서 새롭게 인정받을 수도 있겠다. 이긴 사람이나 집단이 싹쓸이하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사회에서 공존 · 공생 · 공진화의 교훈이 담긴 가진 자의 여유가 있다. 뭐든지 적나라하게 까발리며 미친 듯이 자극을 쫒는 남성화 세상에서 쑥스러움이 밴 중성적인 수사법이다. 이래저래 나는 이 말이 좋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참 좋다.
요즘 우리는 무한표현의 시대를 즐기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기회는 무한정 제공된다. 각종 매체 등장, 정보기술 발달로 표현 방법도 다양해졌다. 소통가치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상하좌우 커뮤니케이션이 자유롭다.
그러나 대화의 롤(role), 룰(rule), 툴(tool)에 대한 생각들이 부족하다. 집단대화나 인터넷 대화가 문제다. 개별이익을 표현하는 시위 때 품격 있는 언어는 눈 씻고 보기 어렵다. 초등학생이 특정인에게 쌍욕을 해대고, 그 자녀의 손을 잡고 온 부모는 더 설친다. 신체밖에 있는 허파나 마찬가지인 인터넷에서 댓 글은 인격 도살장이다. 익명으로 자신을 숨길 수 있겠지만 이 언어비수와 폭력은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 든 자신에게 되돌아 올 부메랑이다. 표현자유가 인간적 존엄을 파괴하기보다 키워주면서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집단적 대화에서 군중심리로 또 다른 생채기를 주기보다 감싸며 감동을 줘야한다. 넘치고 넘치는 생산과잉 시대에 과유불급의 미덕은 오늘날 일상 언어생활에도 적용된다. 말로서 말 많아지고, 말씨가 이화수정되어 괴물을 낳는다.
피천득 선생 등 네 분이 함께 한 <대화> 라는 책을 나는 여름휴가 때마다 즐겨 읽는다. 이번엔 내용보다 그 분들의 대화방법을 좀 눈여겨 봐야겠다. 대화>
우리 모두 대화 때 중성어를 쓰게요. 꼭 그러게요...
/이흥재(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