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불타오르는 대숲 - 유영대

유영대(고려대 교수·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청춘의 달 유월에 국립창극단에서는 창극 <산불> 을 앵콜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산불> 은 차범석 선생님이 60년대에 써서 공전의 히트를 한 연극작품이다. 재작년에 차범석 선생이 작고하셨고, 그분을 추모하기 위하여 연극 <산불> 이 국립극단의 작품으로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강부자 선생이 '양씨'역을 맡아서 6·25 상황의 무게감 있는 어둠을 잘 그려냈다. 그리고 여름에는 <산불> 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 <댄싱 새도우> 도 예술의 전당에서 막을 올렸다. 이 작품은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서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다.

 

국립창극단에서 창극으로 <산불> 을 만들어보겠다고 시도한 것은 창극단 내에서 몇몇 문제의식을 지닌 배우들이었다. 국립창극단에는 봄·가을로 막이 오르는 '정기공연'이 있고, 작은 무대를 통하여 창극단 배우들이 연출하고 제작에 참여하는 '젊은창극'이 있다. '젊은창극'은 이미 고전적 장르가 되어버린 창극을 통하여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살피는 것이었다. 국립창극단원인 박성환 선생이 창극본을 직접 쓰고 연출을 하였다. 그러나 많은 부분은 국립창극단의 여러 배우들이 함께 만든 무대였다.

 

창극단의 배우들은 창극을 통해 현실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을 절실하게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의 목소리로 젊은 느낌의 창극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뜻이었다. 열악한 제작비 수준을 고려하면서도 창극 안에 동시대의 문제의식을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젊은창극'을 만들어낸 기반이 되었다. '젊은창극' 팀에서 <산불> 을 꺼내들었을 때, 일단 도전의식은 높이 샀지만 어떤 무대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뮤지컬로 만든 <댄싱 새도우> 가 실패작으로 평가되면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배우들의 문제의식이 생각보다 치열하여 이 작품에 매달렸다.

 

지난해 십이월 공연된 <산불> 은 상당히 논쟁적이었다. 차범석 원작의 <산불> 은 안숙선의 작창과 이용탁의 작곡이 제대로 어우러져서, 1950년대의 전라도 산골을 완성도 있는 한편의 음악극으로 만들어냈다. 공연계에서는 이 작품에 상당히 주목하였다. 창극을 즐기는 이들뿐 아니라 연극을 애호하는 이들로 객석이 채워졌다. 창극은 전통시대의 예술인 판소리로 채워졌으나, 여성의 성적 욕망을 농염하게 그려낸 해학미는 원작의 구도에 한걸음 다가갔다는 평을 얻었다.

 

펜실바니아 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마일란 교수는 "19세기 언어인 판소리로 20세기 현대사의 가장 문제적인 사건 6·25를 진정성 있게 노래했다"는 멋진 평을 남겨주었다. 연극평론가 양혜숙 교수는 "작은 무대에서 뿜어내는 배우들의 젊은 열기가 좋다. 창극 <산불> 이 창극의 방향성을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극 평론가 곽병창 교수는 "음악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해주었다. 지난해 여름에 무대화된 <댄싱 새도우> 와 창극 <산불> 을 비교해서 평해주신 분들이 많았다.

 

젊음과 청춘의 달 유월에 올린 젊은창극 <산불> 은 '점례' 역의 박애리와 '규복' 역의 임현빈, '사월' 역의 허애선의 연기가 힘찼다면, '양씨' 역의 김경숙 선생과 '최씨' 역의 유수정이 보여준 무게감은 6·25의 비극성을 한껏 살려내었다. 특히 대나무 숲이 타면서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젊은창극' <산불> 이 전주의 무대에 올려졌으면 좋겠다.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담고있는 작품을 실질적인 무대인 전라도 지역에서 공연하면서 뜨거운 논쟁을 벌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유영대(고려대 교수·국립창극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