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선생안(先生案)

관찰사에서 도지사까지 조선시대 인사발령부

1875년에 작성되어 1986년까지 기록된 전라도 관찰사 선생안. (desk@jjan.kr)

'기록'은 인간이 어떠한 일을 행하면서 생산한다. 그것이 자신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기록은 분명한 목적을 띄고 작성된다는 말이다. 기록이 담고 있는 정보의 진위는기록이 만들어진 목적이 무엇인가와 상관없는 경우가 많다. 기록이 남아있다고 해서 기록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스게 소리이지만 한 때 점집에서 점을 볼 경우 자신의 비망록에는 거꾸로 써 놓았다고 한다.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 말해주고, 정작 자신의 노트에는 딸이라 써 놓았다는 것인데, 이것은 맞을 경우 찾아오지 않고 틀릴 경우 생길 수 있는 트러블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한다. 이처럼 기록이 남아 있다 해서 반드시 그것이 사실은 아닐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조금 살았다는 집들, 자칭 양반이라고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는 것 중에 하나가 교지이다. 관리 임명장에 해당하는 교지는 재산관련 문서들과 함께 반드시 보존해야 하는 중요한 것처럼 인식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임금의 도장이 찍혀있고, 종이도 장지로 만들어져 두껍고 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교지를 보고 모두가 벼슬을 했을 것으로 판단해 버린다. 즉 '교지가 남아 있으니 벼슬을 한 것이다'라는 참으로 단순한 명제에는 많은 오류가 남아 있을 수 있다. 일례로 우리 고장의 금제 최병심 선생님은 명릉참봉을 제수 받았고, 지금도 교지가 현존하고 있다. 교지로만 본다면 금제선생님은 명릉참봉을 지내신 것이다. 그러나 금제 선생님은 부임하지 않았다. 즉 교지를 받긴 했지만 벼슬을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런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선생안(先生案)이다. 선생안은 각 관청에서 전임관리들의 성명, 직명, 본적, 이임과 도임일, 교체 이유 등을 책으로 묶어서 기록해 놓은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인사발령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에 쓰여져 있어야 실제 벼슬 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거의 모든 관청들이 선생안을 작성하였기 때문에 실제 벼슬을 하였다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11일부터 열리는 '기록으로 본 전라북도 희망일기' 특별전에 전라도 관찰사의 선생안이 소개될 예정이다. 이 선생안은 '호남도 선생안'이라 표제가 붙어 있고, 1875년 을해년에 다시 기록한 것이다. 1986년 8월 심재홍지사가 이임할 때까지의 관찰사 및 도장관, 지사들이 기록되어 있다. 책의 장정이 매우 훌륭하고 동으로 된 장석이 붙어 있는 등 한지와 출판 인쇄의 고장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선생안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전통을 되살려 복원해 놓는 것도 우리 지역이 가지는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한 방법일 수 있겠다.

 

/홍성덕(전북대박물관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