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수반이 바뀌면 그를 주축으로 새로운 인물들이 등용된다. 국민들은 새로운 인물들이 그들의 능력과 기량을 펼쳐 이전 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생산해 주기를 기대한다. 얼마 전 한 방송사의 신임 사장 선출 장면을 보았다. 소통보다는 무지막지한 인간 장벽을 앞에 두고 불과 몇 초 만에 사장이 선출되는 것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잠깐 궁금했다. 개그 프로그램을 방불케 하는 과정을 통해 사장이 된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쁠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절차에 따라 선출되었는데도 많은 직원들이 인정할 수 없다며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니 기분 나쁠까? 열렬한 환영은 아닐망정 적어도 낙하산 타고 적진에 투하되는 병사의 모습 보다는 조금은 "폼"나게 선출되었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그리고 조금 더 궁금해졌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바뀌는 사람은 얼마나 되고 또 바뀔 자리 수는 몇 개나 될까. 3천개? 7천개? 그렇다면 지금까지 총 몇 개의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앉았을까. 또한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들은 진정으로 자리의 성격에 부합한 주인을 찾았을까. 아직 남은(?) 자리를 향해 간절한 바람으로 내 자리는 언제나 비워질까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인사문제가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것일 게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는 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 )이었다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선발기준은 무엇일까. 부모는 자식에게 집안의 대소사를 맡길 때 무엇을 기준으로 맡길까. 부모는 자식에게 "난 너를 믿는다."라고 말하며 책임감 강하고 능력을 갖춘 자식에게 집안일을 맡기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어떤 부모는 좀 더 사랑(편애?)한다는 이유나 아니면 자식이 하고 싶다고 떼쓰거나, 그저 원한다는 이유로 책임감도 부족하고 자격도 없는 자식에게 집안의 대소사를 맡기기도 한다. 이런 자식이 "운" 좋게 일을 잘한다면야 더 이상 바랄게 없겠지만 어찌 집안의 대소사가 단지 운으로만 이루어지겠는가. 이런 부모는 자식이 실패나 실수를 할 경우 원인을 분석하고 평가하여 향후에는 현명하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길러주기 보다는 맹목적인 사랑으로 자식이 벌려 놓은 일을 대신 책임진다.
자식은 그런 부모가 한없이 고맙겠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서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자식의 수동적 의존성을 더 키우고 나아가 진정으로 독립된 자유와 도덕적 능력이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 역시 사랑의 이름으로 뒷감당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자신에게 있음을 용납하지 못하고 오직 실수만을 만회해 보려는 안간힘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형태의 인사관리 체제일지라도 기본은 있어야 할 것이다. 즉, 특정학교나 종교, 특정지역에 국한되기 보다는 자리의 성격에 부합된 실력(智)을 갖추고 신념이 있어야 하며 상대에 대한 배려와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용기 그리고 감정이나 개인적인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엄격함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본을 갖춘 사람, 말뿐이 아닌 진정으로 국민 섬기기를 다하는 사람이 자리에 앉아야 한다.
/박영주(우석대 교수·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