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엊그제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북도의회의 지난해 의원발의 조례안은 고작 3건에 불과했다. 38명의 도의원이 지난 1년간 활동해온 성적표 치고는 너무 초라했다. 인천광역시 의원 1인당 평균 조례안 발의 건수가 3.06건이라니 38명이 한사람 몫보다도 못한 결과다. 이러니 전국 16개 시·도의회중 꼴찌를 차지한 것은 너무 당연한 귀결이다. 조례 한 건 발의하는데 든 의정비만도 무려 5억1528만원에 달했다. 전북도민들이 가장 비싼 지방자치 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14개 시군의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도내 14개 기초의회에서 의원 발의한 조례안은 70건에 그쳤다. 의원 1인당 발의건수도 0.36건으로 역시 전국 꼴찌에서 두번째였다. 완주와 진안 순창군의회는 지난 1년동안 단 한건의 조례안이 발의됐다. 남원과 김제시 임실군의회는 2건씩에 머물렀다.
도대체 지방의회가 무엇을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에게 입법권이 주어지듯이 지방의원에게는 조례 제정권이 최대 권한이자 책무이다. 또한 풀뿌리 지방자치의 근간이기도 하다.
주민 삶의 질 향상과 편익증진, 행정의 효율성과 생산성 제고, 법의 테두리내에서 지역여건에 부합되는 각종 규정·규칙 제정 등 지방의원의 조례 제정권한과 범위는 적지않다. 그럼에도 도와 시군의회가 주어진 권한과 책무를 게을리 한다면 스스로 존립기반을 저버린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조례제정 건수 하나만 가지고 의정활동 전체를 평가받는 것은 억울할 수도 있다. 집행부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안 심사, 각종 의안과 민원처리 등등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역주민들이 왜 뿔났는가를 모르는 우답(愚答)이다. 의회 본연의 역할은 내 팽개친 채 젯밥에만 혈안인 행태 때문이라는 것을 간과한 처사다.
지난해 의정비 인상이 단적인 예이다.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도와 시군의회가 너도나도 의정비 인상을 강행했다. 재정자립도가 전국 하위권인 무주군이 무려 98.1%를 올려 충북 증평군과 함께 '전국 최고'라는 타이틀을 기록했다. 도와 14개 시군의회가 평균 42.8%나 인상했다.
결국 행자부에서 지난해말 의정비 인하를 권고한데 이어 지난 14일 '의정비 인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입법예고하기에 이르렀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도내 시군의회도 최고 1200만원에서 최저 330만원까지 의정비를 삭감해야 한다. 지방의회에선 이에 대해 "지방자치의 역행"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민의를 거스른데 따른 자업자득이 되고 말았다.
이제 풀뿌리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18년째다.
그동안 지방의회를 통해 지역민들의 삶과 생활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지방의원 스스로 얼마나 민생현안을 챙겨왔는지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선거 때면 상머슴을 자처했던 지방의원들이 당선뒤엔 민(民)과 관(官)위에 군림하지는 않았는지, 지역발전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의원 스스로의 각성이 필요할 때이다.
"누구를 위한 의회냐"는 지역민들의 불만과 불신이 계속 증폭된다면 지방의회는 더 이상 존재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칫 지방자치제도 자체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될 수도 있음을 의원들은 분명히 주지해야 한다.
/권순택(제2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