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피하고 싶은 현실을 마주하라고 한다. 집집마다 '쉬쉬'하던 치부들을 끄집어내 "다 같이 얘기해보자"고 말한다. 잔인하다.
누구는 "억지스럽다. 말도 안된다"고 비난하고, 누구는 "너무 리얼하다. 재미있다"고 감탄한다. 그 와중에 80회로 기획됐던 드라마는 104회까지 연장됐다. 시청률은 30% 대를 넘어 40% 도 넘본다. 지상파 TV 전체 프로그램 중 1위다.
SBS TV 주말드라마 '조강지처클럽'의 문영남(48) 작가를 만났다. 좀처럼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작가를 오래 설득, 21일 압구정동으로 불러냈다. 19인치 허리를 강조하는 검정색 원피스, 화려한 퍼머 머리, 다양한 액세서리를 한 그는 1년여 마라톤을 해온 모습이 아니었다. 피곤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생기가 넘쳤다. 16부 미니시리즈 대본도 제때 못 넘겨 '쪽대본'을 양산하는 작가들과 확실히 체급이 달랐다.
만나자마자 대뜸 내달 28일 종영하는 '조강지처클럽'의 결말을 물었다.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사안.
노련한 작가는 "상식선에서 끝나지 않겠어요? 다만 사람마다 상식은 좀 다르죠"라며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었다.
'소문난 칠공주', '장미빛 인생', '애정의 조건', '정 때문에', '바람은 불어도' 등 대박이 터지는 작품들을 잇따라 내놓은 문영남 작가와의 대화를 소개한다.
--'조강지처클럽'에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별칭이 붙었다.
▲욕해야죠. 뭘 욕하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욕하는 건 당연하다. 온갖 '바람'의 유형은 다 보여주는 것 아니냐. 여자들의 바람까지. 그러나 '난 아니지만 주변에 저런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봤으면 좋겠다. 자기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이혼하려고 했다가 '조강지처클럽' 보고 무너져내렸다는 여성 시청자의 편지가 인상적이었다. "이혼해서는 얻을 게 없더라"고 했다. '조강지처클럽'은 바로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역지사지 해보자, 한 걸음 물러나서 보자고 말한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비겁하고 치졸하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욕 먹을 짓만 하는 것은 다 이탈하고 난 다음에 소중한 것을 되찾고 느끼게 하기 위한 설정이다. 콩가루 집안을 보여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불륜은 안된다는 것이 메시지인가.
▲'조강지처클럽'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 자체가 가정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니겠나. 배우자를 배신하고 가정을 깨는 것은 자식을 봐서라도 안되는 일이다. 가정이 깨지는 이유는 도박, 폭력 등의 이유도 있지만 그 중 가장 심한 것이 불륜이다. 배우자를 인간적으로 배신하는, 정말 나쁜 일 아닌가. 그러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나도 모른다. 또 불륜이라는 것이 사실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 언젠가는 불륜을 다른 시각으로 본 작품을 쓰고싶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하는 '조강지처클럽' 같은 긴 호흡의 주말 드라마에서는 그러면 안된다. 좀더 도덕적이어야한다. 작가로서 사회적 책임감은 갖고 있어야한다.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의 폭이 크다.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요동친다. 화신(오현경 분)에게는 불륜의 가해자인 지란(김희정 분)이 요즘은 동정의 대상이 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긴 드라마는 인생역정을 다 보여줘야한다. 그러려면 인물들 서로가 역지사지를 못해야 이야기가 된다. 서로가 야속하게 생각하고 충돌해야 갈등이 유발되고 드라마가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주인공들처럼 시청자들도 다 입장이 다른 것이다.
양순(김해숙)을 보자. 양순이 자기 아들 원수(안내상) 편을 드는 것을 보면 며느리들은 열받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양순이 며느리 화신 편을 들면 50-60대 시어머니들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할 것이다. 어찌됐든 팔은 안으로 굽는다. 양순은 천상 시어머니다. 그 자신 심한의 외도에 한이 맺혔지만 그렇다고 며느리 편을 들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란이가 도대체 뭐가 불쌍한가. 자식 버리고 바람이 났으면 벌 받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그게 바로 불처럼 달아올랐다가 쉽게 잊어버리는 시청자들의 특성이다. 나 같으면 지란 같은 엄마 절대로 용서 안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요즘 지란이가 당하는 모습을 보니 불쌍하게 생각한다. 그게 드라마다.
--심한(한진희)은 개과천선했나. 요즘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한다.
▲매번 드라마를 쓸 때 작가와 가장 가까운 인물을 한사람 정도 심어놓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심한이다. 심한은 하반신 불구가 된 것으로 이미 벌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요즘 그가 연륜이 묻어나는 말만 하는 것은 벌을 받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양순은 심한을 더 구박해야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시청자들은 천하의 나쁜 인간에게도 상황이 조금 바뀌면 금세 동정심을 표한다. 심한이 장애인이 됐는데 양순이 더 심하게 구박하면 내가 무슨 욕을 들을지 모른다.(웃음) 그래서 일부러 양순의 구박을 좀 약화시켰다.
--원수는 이 드라마를 통해 가장 부상한 캐릭터다. 이런 사람이 진짜 있을까.
▲조금 희화화했지만 이런 남자 분명히 있다. 원수는 순간만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가속도가 너무 붙어 멈춰야할 때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다. 최근 100회 대본을 넘겼는데 안내상 씨의 매니저가 대본을 보더니 "형, 4회밖에 안 남았는데 형이 아직도 반성을 안 해요. 어떡해요"라고 했다더라.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안내상 씨가 처음에 캐릭터를 놓고 갈피를 못 잡았는데 지금은 잘 소화해주고 있다. 여자들은 모르지만 남자들에게는 원수가 인기 최고다.(웃음)
--시청자들은 '절대로 주인공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안된다'고 한다.
▲약간 열린 결말이긴 했지만 결말은 내가 이 드라마를 기획할 때부터 정해져있었다. 104회까지 연장됐지만 흔들림없이 예정했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솔직히 1회 정도 더 필요한 것 같은데 104회에 맞추려고 조절 중이다. 난 아플 정도로 잔인하게 현실을 보여준다. 가는 데까지 리얼리티를 추구하다가 그래도 로망은 있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그 로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현실에 바탕을 둔 극점이다.
--종영이 한달 남았다. 장기 레이스를 마치는 소감은.
▲'바람은 불어도'와 '정 때문에'에 이어 1년 넘게 쓴 드라마는 '조강지처클럽'이 세 번째다. 100회가 다가오면서 캐릭터와 헤어지는게 힘들어지더라. 매번 그렇긴 하지만 이번 드라마는 특히 더하다. 배우들이 많이 말했지만 팀 워크가 너무 좋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드라마로 욕을 먹은 배우들은 부담을 많이 느꼈을텐데 많은 사람이 보니까 욕도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