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 지방행정체제 개편과 啐啄同詩 - 홍동기

홍동기(편집부국장)

원래 중국의 민간에서 쓰여오다 선종(禪宗)의 대표적인 불서(佛書)인 송(宋)나라때의 벽암록(碧巖錄)에 공안(公案)으로 등장하는 줄탁동시(?啄同時)란 말이 있다.

 

공안은 깨우침을 위한 물음의 요체이자 수수께끼로, 책으로 말하면 제목과 같은 것으로 통한다.

 

줄탁동시는 모종의 일이 성사되기 위해 어떤 일의 시도및 노력 등에 대해 화답및 협력이 함께 이뤄져야 할때,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때 등에 인용된다.

 

이 말은 원래 알속에서 자란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세상밖으로 나올때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는 것과 이 때 귀를 세우고 그 소리를 기대려 온 어미닭이 그 부위를 밖에서 쪼아 화답하는 것이 동시에 이뤄짐을 의미한다.

 

줄(?)은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기 위해 부리로 쪼는 것을, 탁(啄)은 품고 있는 알속의 병아리가 쪼는 소리를 듣고 어미닭이 밖에서 알을 쪼는 것을 각각 일컫는다.

 

줄탁동시란 말을 꺼내게 된 것은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가 가열되고 있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에도 적용될수 있을 법하기 때문이다.

 

지방행정체제개편은 1980년대부터 여러차례 논의와 시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지역의 반발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때문에 불발로 그쳤었다.

 

이런 중 논의 재점화는 18대 국회 아젠다의 하나로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설정한 민주당이 광역시·도를 폐지하고 시·군·구를 합쳐 광역화하자고 지난 8월 하순 제안하고 이에 한나라당에서도 "지금 당장 논의를 시작하자”고 맞장구를 쳐 이뤄졌다.

 

여기에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이달 9일 열린 '대통령과의 대화'의 자리에서 "경제권·생활권·행정서비스 관점에서 지방행정개편이 있어야 한다”며 "100여전인 갑오경장때 만든 행정구역은 디지털 시대에 전혀 맞지 않다"고 원론적으로 언급,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양상이다.

 

도내 정치권도 찬성분위기이다.

 

본보가 이달초 도내 지역구 국회의원과 광역·기초단체장, 도의원, 시·군의원 등 총 253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66.4%가 찬성입장을 드러냈다.

 

행정체제 개편의 공론화 배경은 다층화된 행정계층구조로 인력및 예산 낭비가 적잖고 행정의 효율화를 꾀하지 못하며 고착화된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 등으로 요약된다.

 

또 국가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광역도시 중심의 경쟁체제로 가는 세계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체제 개편 추진은 개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고 보면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논의가 진전되면 각 당, 각 정치인들, 지역주민들의 이해관계라는 복병과 맞닥뜨릴수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선거구제, 선거구 획정 등 민감한 정치적 쟁점을 건드릴 수밖에 없어 공을 들이고 있는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들의 반발 등이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보다 큰 광역단위로 분권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며 "한나라당과 민주당 방식의 개편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 일부에서는 "자치단체의 다양성이 무너지고 수많은 국민들이 수백년간 지켜온 고향을 잃어버리게 된다”며 "인위적인 행정구역 개편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등 반론도 없지 않다.

 

여기서 아쉬운 것은 국민들이 논의중심에서 아직 제껴져 있다는 점이다.

 

국가및 지방발전, 지역갈등해소및 국민복지증진 등을 위해 행정체제 개편이 불가피하다면 정치권의 논의못지 않게 국민들로부터 충분한 공감대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추진력을 얻고 성공되게 하려면, 졸속이 되지 않게 하려면 정치권에서 앞서 언급한 줄탁동시 이치(理致)를 새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동기(편집부국장)